[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나만의 능력을 쌓고 성장을 거듭하지만,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은퇴 시점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가속하는 반면 퇴직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 그 막막함에 희망을 얹고 미래의 삶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그의 일에 무게가 생겼고,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할 일 또한 많아졌다. 중장년 퇴직자의 똑똑한 재취업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철호(47) 상상우리 대표를 만났다.
“이달 초에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가 은평구(서북센터)와 영등포구(서남센터) 두 곳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니어들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자 서울시가 만들었고, 상상우리가 운영하게 됐습니다. 오늘 마침 서북센터에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오신다고 해서 제가 발표를 좀 하고 왔습니다.”
바쁘지 않은 날로 인터뷰를 잡아달라고 했는데 듣고 보니 매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중장년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일 외에도 시니어 디지털 교육 등 다양한 활동에서 빠지지 않고 상상우리가 그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상상우리는 2013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기업이자 사회적기업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2018년부터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원으로 5년간 이어왔던 ‘신중년 굿잡5060 프로젝트’가 빛을 발하자 주목받았다. 퇴직자와 중장년의 재취업, 그 나이에 도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흔치 않은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참 많은 것을 시도해 보고 도전해 왔습니다. 우선 ‘신중년굿잡5060 프로젝트’를 통해서 중장년들이 사회, 경제분야로 취업하게끔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성과도 컸습니다. 애초 계획이 5년 동안 1000명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하고 50% 이상 취업을 예상했는데 작년 말까지 60% 이상 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았어요. 그리고 사회 서비스 영역을 발굴했어요. 중장년 중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걸 원하지 않는 분이 계세요. 특히 60대가 생각하는 질 좋은 일자리는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입니다. 풀타임 고용을 힘들어하는 기업도 있죠. 돌봄이나 교육 쪽 등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연결해 드려서 주 2~3일 아니면 주말 일자리 쪽에서도 60%의 중장년이 일자리를 찾으셨습니다.”
새로운 중장년 일자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그 많던 여행사가 문을 닫을 때 지역에 있는 중장년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코로나 때 의외로 국내 여행 플랫폼이 활발하게 운영됐어요. 지역에 계신 중장년이 그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자신만의 여행 콘텐츠를 만들어 상품화한 것이죠. 마이리트립 같은 여행 애플리케이션에 올렸더니 그게 판매가 되고 수익으로 연결됐습니다. 그걸 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그런 사례를 많이 발견했는데, 어떻게 보면 창직의 형태로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데이터 라벨링, 디지털 마케터 등은 저희가 가르치고 취업 알선도 해드리죠. 모빌리티 쪽으로도 중장년 일자리를 확장하고 있고요. 이른 나이에 퇴직한 40대를 위한 유료 과정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취업률이 70~80%에 이릅니다.”
신 대표가 다양한 분야에서 중장년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발굴해 내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중장년 일자리는 청소 용역, 아주 단순한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나머지는 정말 찾기 힘들죠.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것이 없으면 만들자였습니다. 그것을 아예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의외로 성과가 나오고 있고 그게 상상우리의 차별점이 된 것이고요.”
신 대표가 중장년의 일자리를 사업 소재로 삼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사회 서비스 분야에 가깝고, 취업하겠다는 중장년 인구가 사회 초년생만큼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돈이 되는 사업일까? …. 아주 큰 물음표가 머리에 그려질 뿐이었다.
“창업하던 2012~13년에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제 곧 베이비부머가 은퇴 시장으로 쏟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였어요. 당시 제가 알던 분 중 50대 초반에 서울대학교를 나오신 상당한 엘리트셨어요. 그분이 ‘나 몇 년 있다가 퇴직할 텐데, 퇴직하면 뭐 하지?’라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생각을 하셨습니다. 대기업 부장 출신이라는 분이 프랜차이즈를 한다는 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프랜차이즈 사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20년, 30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등 역량이 퇴직과 함께 사라지는 게 큰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내다봤다.
“그런 고급 인력이 매년 수십만 명 나오는 거죠. 그들의 경험을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창업했죠.”
처음부터 신 대표가 하는 일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중장년 자신들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퇴직 후에도 지금까지의 업력을 살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방향키가 없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사람 모으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처음부터 일을 크게 벌인 것도 아니었고요. 서울50플러스재단과 협력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지자체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왔고요, 이제 개인 이용자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내년에는 상상우리가 좀 더 바빠질 것 같다. 1월 초에 여는 인터넷 플랫폼 ‘워크위즈’를 통해 일자리 정보뿐만 아니라 중장년을 위한 콘텐츠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재 앱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중장년을 위한 콘텐츠를 좀 만들어낼 계획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글을 작성하고 있어요. 내부에서도 쓰고 전문가들한테 요청도 하고 말이죠. 중장년들에게 도움될 만한 온라인 수업을 지금도 하고 있고, 자체 오프라인 교육도 늘려나가려고 합니다. 보통은 지금까지 대기업 후원을 받아서 하는 프로그램이 비율이 높았는데, 그동안 못 했던 부분들을 내년에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 또 중요한 계획이 있다면 일자리 박람회를 좀 더 주기적으로 열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이런 일자리가 있다’로 끝내지 않고, 취업과도 연결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잡페스타 앤 커리어 코칭’이라는 이름을 달고 중장년 맞춤 일자리 박람회를 서울경제진흥원(SBR)이 시범 시행했다.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신중년 재취업 프로젝트인데 시범 운영도 꽤 잘됐습니다. 저희는 청년 스타트업이나 강소기업 위주로 박람회를 열었는데 40여 개 기업이 신청했어요. 저희 원칙 중 하나가 박람회가 열리기 전 서류 검토를 다 하는 겁니다. 박람회에서는 실제로 면접만 보는 거죠. 아무런 대책 없이 일자리 박람회에 가서 현장 면접을 보는 방식이 아니고요. 분야별로 요구사상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과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 찾아주는 겁니다. 시범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한 것에 비해 행사를 잘 치렀다고 나름 평가했습니다. 기존 일자리 박람회처럼 부스 만들어 놓고 사람들 왔다갔다하는 박람회는 하지 말자고 하고 있어요.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하는 큰 박람회가 아니라 정말 가서 일할 회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적인 차원의 일자리 박람회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특히 중장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분야 일자리 비율을 확대하고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일자리 시장을 만들고 그걸 생태계로 만들자는 것이 초기 계획이라면 이후부터 디지털 분야를 좀 더 더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디지털은 중장년과 약간 결이 좀 다른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우리 회사를 통해서 1000명 넘는 중장년이 디지털 분야에 취업하셨습니다. 디지털은 배우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쉽게 쓰는 문서 작성이나 파워포인트 어려워하시잖아요. 디지털을 활용해서 일을 더 잘하는 방법들을 저희가 더 많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하나금융그룹과도 디지털을 적용하는 사업을 많이 하려고도 하고 있어요.”
지난해 아쇼카재단(Ashoka 미국 기반 비영리 단체로, 개별 사회적 기업가를 연결하고 지원하여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장려한다)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에서 열린 뉴롱제피티 컨퍼런스에서 참석했다는 신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국이 중장년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에 대해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퇴직 연령이 49세인 것에 반해 일반적으로 연금을 받는 연령은 65세로 그때까지 15년 정도의 공백이 생긴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 기간을 우리 사회가 아직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상상우리는 15년의 시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했거든요. 그곳에서 만난 분들이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신 대표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중장년들이 어떤 일이라는 부분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계속 개발해내는 것이 상상우리의 일이며 사명이라고 했다. 상상우리를 처음 만들 때의 마음처럼 중장년, 더 나아가 시니어세대가 연륜과 노하우를 가진 존재로 지속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마음에서다.
“제 개인적인 목표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중장년의 인생 2막에 대한 솔루션을 제일 잘 만들고 있는 나라다’라고 보여줄 만큼 노력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찾아내서 꼭 이루어 내고 싶습니다.”
신 대표의 마음이 제대로 통한다면 우리 사회가 퇴직자의 지혜와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생각하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미래가 두렵지 않은 노후를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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