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에 수익성 악화
정유업계, 반짝 반등한 3분기에 ‘횡재세’논란
석화업계, 전통사업 정리·친환경신사업 추진
2023년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 상황은 ‘전호후랑(前虎後狼,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으니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에 비유될 정도로 악재가 겹쳤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전방 산업 수요 부진과 주요 산유국들의 공급과잉 등 영향으로 위기가 계속됐으며, 내년 경영환경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정유·석화업체들은 친환경 사업을 강화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 중국에, 러시아에, 미국에…첩첩산중
정유·석유화학 업계 위기에는 최대 석유화학제품 수출시장인 중국이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업체들이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을 높이는 가운데 중국 내 수요 부진까지 겹쳐 공급과잉 현상이 이어졌다.
중국업체들이 기술장벽이 낮은 범용제품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나가고 있어 범용제품 의존도가 높은 석화업체들의 실적은 더욱 나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으로 수요 면에서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의 효과도 미미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제2의 산유국인 러시아와 미국도 상황 악화에 가세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러시아 원유를 헐값에 판매했다. 러시아의 원유 덤핑에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정유사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석화업체의 나프타크래커(NCC) 가동률도 급락했다.
이후 국제유가를 상승시키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에 나섰지만 최근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유가 상승을 막고 있다. 정유사의 원유 구입 시기와 정제제품 판매 시기가 달라 유가가 하락하면 통상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다.
유가하락으로 원가 부담이 낮아지는 석유화학업계에서도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실적 개선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반짝 빛났던 정유업계…다시 암울한 전망
올 상반기 정유업계는 손익지표인 정제마진의 하락으로 손실이 컸지만, 하반기에 들어서 여름철 드라이빙과 항공 수요에 맞물려 수익성이 개선됐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3분기에 유가가 급상승하면서 흑자 전환하자 다시 한번 ‘횡재세(초과이득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4분기에도 다시 업황부진이 예고되면서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요 산유국들이 적극적인 원유 감산을 발표했지만, 미국의 원유 생산 확대 등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 지침이 나오면서 비상등이 걸렸다. 미국이 지속가능항공유(SAF)에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항공사들이 기존 석유 기반 항공유를 SAF로 대체하게 되면 주요 항공유 시장인 미국향 수출 물량이 감소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 8월 HD현대오일뱅크는 폐수 방출 논란에 휩싸여 더욱 고초를 겪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에서 유해물질 ‘페놀’이 포함된 폐수를 불법 배출한 혐의로 불구속기소가 됐다. HD현대오일뱅크는 폐수가 아닌 ‘공업용수 재활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 석유화학업계의 길어지는 불황터널
석화업계에 불어닥친 한파는 장기화로 치닫고 있다. 지난 2분기 배럴당 90달러를 넘는 국제유가에 원가 부담이 커져 수익성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이에 LG화학의 NCC 공장 매각설이 나오기도 했다. 공급과잉을 겪는 에틸렌 등 석유 화학원료를 생산하는 곳으로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커져 가동을 멈췄었다. 현재 재가동은 하고 있으나 사려는 곳만 있으면 언제든 매각할 것으로 추측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월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동박 생산 업체를 인수해 배터리 소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성장이 둔화와 중국업체의 저가 가격 공세에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 기존 사업 대신 신성장동력 찾아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친환경·스페셜티 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탈석유 기조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전통사업보다 신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SAF와 같은 친환경 연료사업을 육성하고 석유화학제품 사업 비중을 넓히고 있다. GS칼텍스는 ‘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올레핀 생산 시설(MFC)를 준공했다. 에쓰오일도 석유화학 비중을 현재보다 2배 이상 확대하는 ‘샤힌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석화업체들은 범용 제품 사업들은 정리하고 친환경 사업으로 사업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중국의 기초 석유화학 사업을 접고 SKC는 폴리우레탄 원료 사업을 매각했다. LG화학도 편광판 소재 사업에서 손을 뗐다.
석화업체들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할 방침이다. 탄소중립 트렌드에 맞춰 배터리, 친환경 소재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친환경 사업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금호석유화학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달 초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CCUS)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핵심 설비 공장 착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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