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행동주의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에 대주주 중심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며 저평가 해소를 위한 주주활동에 나서고 있다.
태광산업도 트러스톤과 대화를 통해 이사회 중심 독립경영 체제를 내세우는 등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지만 신사업 및 설비투자에 집중하면서 주주환원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광산업은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아크릴로니트릴(AN)등 섬유 원료를 주력으로 생산·판매하는 국내 섬유·석유화학 기업이다. 태광산업의 시가총액은 6800억원, 자산규모는 5조원에 달한다.
태광산업은 동종업계서도 대표적인 저평가 종목이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13배로 코스피(0.91배), 화학업종 평균(0.82배)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배당성향은 1%에 못미쳐 ‘짠물배당’으로 불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코스피 평균 배당성향은 35%다. 태광산업이 주주환원에 소극적이며 대부분의 자본을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트러스톤은 지난 2021년 태광산업 지분 5%를 확보하면서 대주주로 급부상했다. 이후 지분 매입만 해오다 지난해 12월 태광산업 오너일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 흥국생명이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는데 태광산업이 참여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이어 투자 목적을 경영권 분쟁 목적으로 변경하면서 본격적인 주주활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난 2월 태광산업에 저평가 이유와 배당·자사주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 비영업자산의 효율화 등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감사 선임 등을 제안했으나, 오너일가의 반대에 가로막혀 제안했던 모든 안건이 부결되고 말았다.
지난 9월말 기준 태광산업의 주요 주주는 △이호진 회장 29.48% △티알엔 11.22% △이원준 7.49% △학교법인일주세화학원 5% △이동준 0.67% △이태준 0.67%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이 54.53%에 달하고, 트러스톤은 5.74%를 보유하고 있다.
주주제안 부결됐지만…지배구조 개편 끌어낸 트러스톤
트러스톤은 정기주주총회 후에도 태광산업을 상대로 꾸준히 비공개 대화 등 주주 활동을 진행해왔다. 실제 트러스톤과 태광산업 경영진은 분기별로 소통을 할 정도로 대화가 원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가 일부 경영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태광그룹은 경영체제의 전환을 발표했다. 그룹 차원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비전과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미래위원회를 설립, ESG경영 5개년 계획과 사업별 주요 추진과제를 공개했다. 이해관계자 소통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2027년까지 ESG 성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특히 이사회 산하에 대표이사 2인과 사외이사 3인 등으로 구성된 ESG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10년간 변동없던 태광산업 이사회의 변화’라며 지배구조 개선과 ESG경영 의지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트러스톤도 ‘태광그룹의 ESG경영’을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의 미래위원회가 그룹의 비전 및 기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 기대한다”며 “후속 조치와 그 실행을 통해 태광그룹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분기별로 트러스톤 경영진이 만나고 있으며, 최근 발표한 이사회 중심 경영체계도 트러스톤 의견을 듣고 일부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데일리임팩트 주최 ‘행동주의와 그 적들’ 토론회에서 “현재 사측과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며 “이번 발표와 같이 실질적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는지 계속 살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트러스톤이 태광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 낸 것 뿐 아니라, 비판·견제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저지한 것도 큰 성과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같은 토론회에서 “지난해 태광산업이 영업과 무관한 흥국생명 400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트러스톤이 문제 제기해 막은 선례가 있다”며 “이는 행동주의펀드가 오너일가 횡포에 문제를 제기해 주주가치훼손 사례를 막은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10조 투자해 사업구조개편 나선 태광산업…주주환원은 언제쯤?
물론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먼저 태광산업은 아직도 투자자를 위한 배당확대·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규모 투자로 인해 당장 주주환원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화학섬유 중심 사업구조의 수익성 악화로 태광산업은 2022년 2분기부터 올 3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8월에는 사업환경 악화와 수익성 부진에 따라 총 매출 3.6% 규모의 방직사업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12월, 향후 10년간 신사업에 5조50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석유화학과 섬유부문에 총 10조원 규모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10조원에 달하는 투자자금의 조달 방안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태광산업이 보유한 1조4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투자계획에 대해 트러스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트러스톤은 지난 2월 주주서한에서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고민이 없는 관성적 자본배치 정책의 일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현재 업황이 좋지 않아 경영 안정을 우선적으로 두고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안정적 경영체계가 갖춰지면 주가도 자연스럽게 부양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호진 전 회장, 횡령·배임 논란에 주가 흔들..학계 “오너 리스크 정점”
오너 리스크도 여전하다.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태광산업 최대주주 이호진 전 회장이 주주활동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경찰은 이 전 회장의 자택과 태광그룹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전 회장은 태광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비자금 등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당국은 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골프장 운영업체가 다른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렸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이 전 회장의 경영비리는 역사가 오래된 사안이다. 2011년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섬유제품 규모를 조작하는 ‘무자료 거래’로 총 421억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여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2011년 3월 간암으로 구속 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듬해 6월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7년 넘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 등으로 태광산업의 실적과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태광산업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출액이 1조원 가량 떨어졌다. 주가도 이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 2011년 한때 180만원대에 달했으나, 49만원 선으로 떨어졌다가 현재는 6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교수는 “태광산업은 오너리스크가 정점에 있는 기업 중 하나인 만큼 (트러스톤이) 이 부분에 훨씬 더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선 개별 기업이 가진 세부 이슈를 짚어 문제 제기하는 것이 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러스톤은 사측이 발표한 ‘이사회 중심 독립 경영’을 지켜보고 비공개 대화를 통해 저평가 해소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사장은 “사측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이사회 개편 방안도 제시하는 등 변화도 보여주고 있어 회사가 어떻게 진정성을 변화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자산 효율화를 통한 PBR, ROE 등 개선을 위해 대화를 통해 꾸준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데일리임팩트는 지난달 27일 국내 주요 행동주의펀드의 전략과 성공·실패담을 가감없이 살펴보는 ‘행동주의와 그 적들’이란 토론회를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 태광산업에 열띤 토론이 진행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우진 서울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교수,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부문 대표,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 등이 토론을 벌였고 김준섭 KB증권 연구위원이 ‘일본의 행동주의 특징과 시사점’이란 발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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