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예금이 일본인 자산 절반 차지
인플레 시대 오면서 투자 중요성 부각
‘예금 인출’ 막기 위한 경쟁 펼쳐질 듯
‘저렴한 자금 조달원’ 확보 기대도
일본 주요 시중은행들이 수년간 사실상 ‘제로(0)’%에 가깝게 유지했던 정기예금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금융완화 출구 전략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확산하면서 예금 유치 경쟁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쓰비시UFJ은행,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이 최근 몇 주 동안 10년 만기 예금 금리를 연 0.002%에서 0.2%로 100배 인상했다. 그 중에서도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이 일본에서 금리를 올린 것은 2011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대폭적인 금리 인상에도 금리가 연 0.2%에 그친 것은 일본의 이례적인 마이너스 금리 환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 100배 인상이 다가올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픽텟자산운용재팬의 오츠키 나나 선임 연구원은 “장기금리 지표인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가 상승했음에도 예금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비판 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은행들이 선수를 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의 임금이 계속 오르고 경제가 호조를 보이며 주가가 상승할 경우 사람들의 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투자 상품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이에 은행들이 다른 은행보다 예금이 빨리 감소하는 것을 막고자 예금 금리를 더 올리는 등 고객 유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7년간 고수해 온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을 조만간 해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9개월 연속 목표치인 2%를 웃도는 데다가, 엔저에 따른 경제 부담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은행이 내년 봄 일본의 임금단체협상(춘투) 때 물가와 임금 인상을 비교하면서 본격적인 통화정책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정기예금 금리 인상은 시중은행들이 이제 본격적인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일본의 한 지역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이 신규 예금 유치를 지점 직원의 임무 중 하나로 삼았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많은 일본인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신의 구매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산 절반 이상을 현금과 예금으로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계속해서 일본은행 목표를 초과하고 마이너스 금리 해제가 가까워지면서 일본 소비자들은 단순히 돈을 집에 보관하거나 은행에 두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축이 아닌 주식 등 투자 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고객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고객들이 자기 은행에서 예금을 빼내는 것이 싫다면 그만큼 다른 은행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이 임박하면서 예금 자체를 보는 은행들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현행 마이너스 금리 정책하에서는 시중은행의 예금 유치의 필요성이 적었다. 일본은행에 잉여 자금을 보관하려면 오히려 비용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정기예금이 저렴한 자금 조달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은행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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