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연일 부도설에 시달리고 있다.
태영건설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국내 도급순위 20위권 내 건설사의 부도설 여파는 건설사 줄도산 위기감을 키우는 쪽으로 불티가 옮겨붙는 모양새다.
건설 경기 악화, 공사비용 증가, 고금리 장기화의 삼중고에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하는 데다, 사업 시작 후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채 이자만 내는 미착공 사업장이 늘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건설업 위기는 건설만의 문제가 아닌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총선 이후로 예상됐던 금융당국의 ‘PF 사업장 구조조정을 통한 옥석가리기’ 패가 벌써 나오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태영건설 유동성 위기 ‘빨간불’…왜?
태영건설의 유동성 위기설이 계속해 불거지는 이유는 부동산 PF 관련 보증 대출잔액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부동산 PF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 사업을 진행한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불황으로 돌아서면 부채 규모가 막대하게 불어날 수 있다.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대출을 보증한 시공사, 즉 건설사가 대신 빚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추가 도급계약으로 태영건설의 보증 잔액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문제는 미착공 사업들이 늘어나는 점이다. 고금리 장기화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이자만 내는 상태로 남아있는 현장이 늘고 있다. 이 상태에서 상환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대출 연장 없이 사업이 마감되면 건설사들은 보증 금액을 떠안아야 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9월말 기준 태영건설이 보증한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4조4100억원 규모다. 이중 민간 사회기반시설(SOC)을 제외한 순수 부동산 개발 PF 보증액은 3조2000억원에 달한다. 9월말 자기자본 8400억원의 3.8배 규모다.
부동산경기가 꺾이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태영건설이 수주한 계약 23건 가운데 9월말 현재 미착공 상태에 있는 건은 14건이다. 통상 수주와 착공간에 시차가 있긴 하지만 2년간 수주계약의 절반 이상이 미착공 상태라 이자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착공 계약 대부분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대비 개발위험이 높은 지방에 몰려있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착공 현장에서 대출 연장 없이 사업을 마감할 경우 태영건설이 이행해야 하는 보증액은 약 7200억원”이라며 “내년부터 사업성이 부족한 현장의 PF 대출 재구조화 작업이 본격화하면 태영건설이 직면하게 될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지난 6월에는 자기자본 대비 PF대출에 따른 우발채무 규모가 비대하다며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회사채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한 등급 아래로 강등한 바 있다.
차입금 늘면서 이자비용 급증…유동성 경보 지속
유동성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태영건설은 그룹사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충분치 않다는 시각도 나온다.
태영건설은 올해 초 태영그룹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공동 설립한 계열사 에코비트 지분을 담보로 400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말 483.6%까지 올랐던 부채비율을 450%대까지 낮출 수 있었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에 올해 총 8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지주사인 TY홀딩스는 물류부문 자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 평택싸이로를 KKR에 약 3000억원에 매각해 연말 전까지 매각 대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그룹차원의 지원과 PF 구조 개편으로 유동성 문제를 타개하고 있다”면서 “2~3분기 실적도 잘 나왔고 차후 그룹 물류부분 매매 계약이 체결되면 이달 말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태영건설은 앞서 지난 9월 입장문을 통해 “규모가 큰 사업장 및 미착공 업장에 대해 일부 시행 지분을 매각하거나 사업 철수를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최근 만기를 연장한 성수동 오피스 개발사업의 경우 지주사와 공동사업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협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는 계속 불거지고 있다. 연이은 자금 조달로 이자비용이 커진 데다, 차입금 만기가 돌아오는 사업지 역시 늘고 있어서다.
태영건설의 총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말 1조7460억원에서 올해 9월말 2조1550억원으로 늘었다. 단기차입금이 6608억원, 장기차입금이 1조4942억원이다. 이는 내년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발행 사채 2800억원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올 초 450%대까지 줄었던 부채비율은 478.7%까지 다시 올랐다. 시공능력평가 35위권 내 대형 및 중견건설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차입금이 늘어나며 이자비용도 큰 폭으로 늘고 있어 벌어서 갚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자비용은 지난해 말 725억원에서 올해 9월말 1271억원으로 75% 증가했다. 태영건설은 3분기 누적 매출액 2조3891억원, 영업이익 977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와 비교해 양호한 실적을 거뒀지만,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을 넘어선 상태다.
지난해 1.3배였던 태영건설의 이자보상배율은 올해 3분기 기준 0.8배로 떨어졌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1이면 영업으로 번 돈 전부를 이자비용으로 내야 하며, 1보다 작으면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 연말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지들이 연이어 대기하고 있다. 차입금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지는 △22일 전북 전주 개발사업 ‘에코시티’를 시작으로 △29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성북맨션 재건축사업 △내년 1분기 경기 광명 역세권 개발사업과 경남 김해 삼계동 도시개발사업, 경기 의정부 오피스텔 개발사업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태영건설 유동성 공급노력…금융권 엇갈린 시선
금융권 내에서는 태영건설 위기설에 대해 시선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모두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당장 채권단에서 액션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실질적인 워크아웃 수준의 부실징후가 드러나기 전에 움직이면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분위기도 있다”면서 “다만 은행은 연말 연체율 관리에 민감해 시점상 만기연장으로 연체율을 높이지 않으려는 심리도 깔려 있어 연말이 지나고 상황을 재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채권자들이 중견 건설사인 태영건설에 위기가 불거지면 연대보증 등으로 연결된 건설사나 하청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어 상환요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태영건설 정도 크기의 건설사가 무너지면 연쇄 도산 우려가 크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가능한 만기 연장을 해주는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면서 “당국이 PF대출 관련 옥석 가리기에 나선다고 한 만큼 연말 이후, 총선 전후로 분위기가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의 유동공 공급 자구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자구노력을 통해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길 바라고 있지만, 적극적인 자구책 마련이 기대만큼 신속하고 적극적이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있다”면서 “당장 만기를 일부 미룰 수는 있지만 대주단 가운데 일부 금융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도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태영건설 회사채 신용등급이 하락한 부분도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전체적인 건설업종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태영건설의 경우 우발부채도 크기 때문에 회사채를 발행하는 공모상품 수요처에서 담기 어려워 사실상 추가적인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전문위원은 “연장했던 부동산 PF 브릿지론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 건설사들에 고비가 올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경기 부침이 덜한 토목분야에 비해 부침이 심한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중견 건설사들이 내년 고비를 맞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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