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시장 기대 과도해”
“美 금리 인하 논의 아닐 수도”
물가·가계부채 불안에 고심
한국은행이 과도한 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긋고 나섰다. 시장의 이같은 관측이 자칫 물가와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미국이 먼저 움직이더라도 이른바 마이웨이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강조한 만큼 독자 노선을 걸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일 오후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를 통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이 지난 1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가 FOMC의 논의 주제 였다”고 언급한 데 따른 이 총재의 해석이다. 이날 FOMC에서는 ‘금리가 정점’이라고 언급되고 내년 세 차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연준은 공개된 금리 점도표에서는 내년 정책금리 중간값을 기존 5.1%에서 4.6%로 낮췄는데 내년 기준금리가 세 차례 내려가 현재보다 0.75%포인트(p)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총재는 “제 생각에 파월 의장의 금리 인하 관련 언급은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오래 가면 상당히 긴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시장은 내년 100bp(1bp=0.01%포인트)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보는데 과잉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닌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반응하는 것 만큼 파월의장 발언이 예측 밖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금리 인하로 인한 한은의 조기 통화정책 전환에 대한 기대감도 일축했다. 이 총재는 “(미국과 한국은) 첫번째로 변동금리 구조가 큰 차이가 있어서 임팩트가 다르다”며 “유가가 올라가면 얼마나 인플레이션에 반영되는지, 내려가는 속도가 어떤지 봐야 하는데 미국은 이번 점도표에 수렴 속도를 반영했지만 우리 입장에선 유가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디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 메시지에 신중한 것은 아직 물가 지표가 불안해서다.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내년 하반기 2.3%, 연말로 갈수록 2%대 가까워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국제유가·환율·농산물가격 오르면서 물가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졌다.
또 앞으로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비용압력의 영향 등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특히 전기·도시가스 요금의 점진적 인상, 유류세 인하폭 축소 등이 내년 중 물가 둔화 흐름을 다소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계부채도 긴축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91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증가했다. 이런 증가세는 지난 4월(2조3000억원) 이후 8개월 연속이다.
이 총재는 성장과 가계부채 중 어느 곳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 “가계부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금리 정책이 장기적으로 가계부채를 조정하는데 방해되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미국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시사했다. 미국이 먼저 금리 인하해도 우리나라의 물가 경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연준의 내년 점도표가 얘기하듯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나라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보면, ‘미국이 더이상 확실하게 금리를 올리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통화정책을 할 때 자본시장, 환율 등 제약 조건이 풀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독립적으로 국내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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