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을 비워두는 ‘필로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필로티 설계에 따른 1개층 상향을 수평증축이 아닌 수직증축으로 판단하면서 2차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리모델링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리모델링이란 노후화된 건물을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구수는 기존의 15% 이내에서, 층수는 최대 2~3개층을 높일 수 있다. ▷관련기사: ‘가구수 늘려줄게’…리모델링 훈풍? 희망고문?(6월7일)
최근 쟁점이 된 건 공동주택의 1층을 필로티 구조로 전용해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가구수를 증가하지 않고 수직으로 증축하는 행위다. 이 같은 필로티 설계는 수직 증축으로 보지 않고 1차 안전진단만 실시했던 게 기존 관행이었다.
하지만 수직증축으로 판단하는 새로운 법령해석이 등장하면서 2차 안전진단까지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구조안전성 여부에 대한 상세 확인을 위한 조치다.
국토부 “법령해석 따라 안전진단 실시”…서울시 “기존 단지도 적용”
법제처는 지난 7월 국토부가 질의한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에 가구수를 늘리지 않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 법령해석을 내놓았다.
필로티 설계에 대해 주택법 제68조4항 ‘해당 건축물의 구조안전성 등에 대한 상세 확인을 위해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와 제69조2항 ‘제출된 설계도서상 구조안전의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해 전문기관에 안전성 검토를 의뢰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용해야 하는지가 골자다.
법제처는 “포함된다고 보는 게 입법취지에 부합한다”며 “(위 조항은) 안전성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수직증축 방식 리모델링의 구조안전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리모델링 전의 구조안전성 등 상세 확인을 위한 안전진단 및 리모델링 설계도서상 구조안전의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한 안전성 검토를 의무화하기 위해 신설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에 ‘공동주택 리모델링 관련 법령해석 결과 및 유권해석 변경 알림’ 공문을 발송했다.
국토부는 “1층을 필로티 구조로 전용하고 최상층 상부에 1개층을 증축하는 등 세대수를 증가하지 않는 수직증축에 대해 안전진단, 안전성 검토 등 규정이 적용된다”며 “법령해석 시달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단지에 대해 이를 적용해 달라”고 알렸다.
이어 “기존 유권해석에 따라 이미 조합설립을 인가받아 추진하고 있는 단지에 대해서는 지자체별로 사업의 인·허가 및 심의 과정에서 해석 대상 규정의 취지 등을 고려해 안전 확인 절차를 시행할 수 있다”며 “필요시 안전성 검토, 구조심의 등 적합한 안전성 확보 방안을 검토·시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법제처 법령해석에 따라 향후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단지에 대해 안전성 강화를 주문하고, 이미 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의 경우 각 지자체에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맡겼다. 서울시는 조합설립인가를 이미 받은 곳에도 이 같은 조치를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공동주택 리모델링 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법률자문 결과 알림’ 공문을 국토부에 보냈다. 시는 “법률검토(자문) 결과에 따라 해당 리모델링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여부와 관계 없이 안전진단 및 안전성 검토 등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자치구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리모델링 업계 “가뜩이나 악재 가득한데…”
리모델링 조합이 모인 서울시 리모델링주택조합 협의회(서리협)는 지난 12일 간담회를 열고 “안전진단과 안전성 검토가 추가돼 사업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반대급부로 통합심의 및 인허가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서리협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73개의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됐고 추진위원회 58개까지 합치면 131개 단지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리협은 100개 이상 단지가 추가적인 인허가를 진행하거나 필로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추산했다.
서리협 관계자는 “수평증축 방식으로 조합원 동의를 얻어 추진해왔는데 갑자기 수직증축으로 간주해 이행하라고 하니 사업지연과 비용상승 리스크가 발생한 상태”라며 “안전진단 C등급 단지는 필로티 적용이 불가능하고 B등급 단지도 구조검토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전이 최우선임을 우리도 모르지 않지만 대안 없이 갑작스럽게 바뀐 내용을 받아들이라는 방식은 매우 아쉽다”며 “가구수 증가 없는 필로티 적용에 한해 안전진단 C등급 단지도 안전성 검토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과 서울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정태 서리협 회장은 “11월에 서울시 주택정책실장과 간담회를 했는데 안전에 대해 확고하더라”며 “1·2차 안전성 검토와 2차 안전진단 모두 거치면 2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심의와 인허가 절차만이라도 간소화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가 노후화 방지와 환경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리모델링”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가만히 둬도 힘든 상황에서 자꾸 규제가 들어오면 조합 입장에서는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기 참 힘들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수직증축 절차를 밟지 않고 1개층을 상향한 곳도 안전성 검토를 거쳐 문제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며 “국토부가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한 건 맞는데 혼선을 빚어가면서 당장 적용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도 리모델링 업계엔 부담이다. 일명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안전진단 면제와 용적률 완화, 종상향을 골자로 한다. 경기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 등 51곳이 적용 대상으로 거론된다. ▷관련기사: ‘아파트는 늙어가는데’…1기 신도시 재건축? 리모델링?
이 위원장은 “적용 대상이 아닌 단지들도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나은 것 아니냐’ 하면서 심리적으로 흔들린다”며 “공사비가 가파르게 올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등 가뜩이나 악재가 많은 상황에 하나 추가되니 좀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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