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 금품 수수로 수조원 가치 기술 팔아넘겨
근본적인 원인, 직업 윤리 넘어 솜방망이 처벌 탓
최근 반도체 업계가 ‘기술 매국노’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쟁사인 중국 업체에 핵심 기술을 무단으로 넘긴 삼성전자 전직 부장급 직원들이 구속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유출된 기술은 18나노급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로, 이들은 수백억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개인 몇몇이 수백억원과 맞바꾼 기술로 인해 업계가 입은 피해는 한화 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올 상반기에는 삼성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베끼려는 시도도 있었다. 국내 반도체 대표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모두 경험했던 전직 임원은 삼성전자 클린룸 환경조건과 공정배치도 등을 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중국에서 4600억 원을 투자받아 현지 반도체 회사를 설립한 뒤 삼성 등에서 핵심인력 200여 명을 영입하는 방식이었다. 복제 공장이 들어설 위치는 삼성 시안공장과 불과 1.5km 거리. 한때나마 국내 산업 역군이었던 산업 스파이의 당당함과 대담함을 동시에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 30여년간 연구개발해 최대 수조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반도체 국가핵심기술을 단순 유출을 넘어 공장을 복제해 중국에 건설하려는 시도였다. 우리 경제안보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조원대의 피해를 입힐 수 있었던 중대한 범죄를 행한 전직 임원의 법적 대가는 고작 5000만원이었다. 나라 안보를 흔들 수 있는 스파이짓을 시도했던 전직 산업 역군에 대한 응분의 대가치고 상당한 푼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대한 범죄’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반도체 강국이 이처럼 많은 기술 매국노를 보유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이유는 단순하다. 근시안적으로는 첨단 기술 탈취를 노리는 중국 업계의 횡포에 가장 큰 원인이 있는 듯 하지만, 멀리 보면 결국은 ‘나 하나만’ 이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반도체인 양산을 가능케하는 솜방망이 처벌 탓이다. 국내 산업기술보호법이 정한 징역형은 최대 15년, 벌금은 최대 15억원이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도체·전자 등 산업 기술의 해외 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142건에 달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최근으로 올수록 관련 기술 유출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 역시 정기 감사 등을 통해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첨단 제조업의 규모와 여러가지 특성상 이는 역부족이다.
유혹에 흔들리는 반도체 인재들의 산업 윤리 의식도 물론 중요하다. ‘로또 당첨’ 수준으로 팔아넘기는 기술의 대가가 향후 국가적으로 어떤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교육과 더불어 ‘내 밥그릇 걷어차는 일’이라는 인식 강화에 기업과 정부가 힘써야 한다. ‘금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처우 개선’이라는 추상적인 명목은 사실상 의미가 퇴색됐다. 기업이 무슨 수로 모든 임직원에게 수백억원의 리베이트를 뛰어넘는 보수와 처우를 제공하겠나. 국가핵심산업 근간을 뒤흔드는 이들에게 사법부의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