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황재희 기자] 카카오 혁신의 키를 쥔 자리에 여성들이 내정돼 눈길을 끈다.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카카오 단독대표로 내정된 데 이어 최근 최혜령 크레디트 스위스(CS)상무가 카카오 투자를 담당할 구원투수로 영입됐다. 지난달 출범 후 18일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 역시 수장은 김소영 전 대법관이다. 이에 김범수 창업자가 ‘쇄신’ 적임자로 여성들을 내세운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카카오는 100명의 CEO를 양성하겠다며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유지해왔다.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을 강조하는 이 같은 문화 덕분에 카카오는 급성장했지만, 현재는 독이 되고 있다. 거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걸맞은 기업 문화를 갖지 못한 까닭이다. 내부 통제 상실, 소통의 부재와 같은 문제들을 수년 전부터 대두돼 왔던 만큼, 카카오의 혁신은 예상보다 더 고통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 조직의 내상을 최소화하면서도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의 공감 능력을 활용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정 내정자는 이날 준신위의 첫 회의를 앞두고 김 위원장을 비공식 방문해 인사를 나눴다. 경영을 총괄하는 정 내정자 입장에서 환부를 도려내는 역할을 맡은 김 위원장은 달갑기만 하지 않을 터. 그러나 두 사람은 창과 방패의 위치에서 서로를 견제하기 보다는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연대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범수 창업자 측근인 김정호 경영지원총괄이 욕설 논란·내부 비위 폭로 등 일방통행식 행보로 논란을 자초했던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정신아, 류긍선과 동행…내부 다독이기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정 내정자와 김 위원장이 나란히 활동을 개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 내정자는 판교 카카오아지트에서 열린 비상경영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쇄신 의지를 밝혔다. 그는 카카오 CA협의체 내 사업 부문 총괄이자 김범수 창업자가 이끄는 경영쇄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매주 경영회의에 참석해온 20인 중 한 명이다. 다만 공식적으로 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건 이날이 최초다.
정 내정자는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에 다소 부담을 느낀 듯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향후 구상을 설명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쇄신TF(태스크포스)부터 시작해서 크루(직원)들과 얘기해보며 앞으로 어떻게 (경영 활동을) 할지 구상하겠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는 특히 ‘구성원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 이목을 끌었다.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와 함께 나온 것이다. 정 내정자는 짧은 입장 발표 후 “저보다는 옆에 계신 류 대표님이 지난주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발언권을 넘겼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골목상권 침해, 독점적 지위 남용 등으로 지난해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카카오의 변화를 책임질 새 대표가 임기 시작 전에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은 계열사 수장과 동행하는 건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정 내정자는 내부 구성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카카오 본사는 모빌리티 매각을 추진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카카오 내부 불협화음과 균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계열사인 셈이다.
게다가 카카오모빌리티는 공동체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자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 알고리즘 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사정당국도 예의주시하자, 발빠르게 대응 중이다. 택시업계와 논의한 상생협의안이 대표적이다. 카카오모빌리티처럼 카카오 공동체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자 류 대표와 같이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소영, 사회적 책임 강조…변화 예고
정 내정자가 침체된 내부 분위기를 다독였다면, 김 위원장은 대대적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공동체 내 준법경영과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카카오 핵심 경영진의 일탈행위가 반복된 점을 고려할 때 쇄신작업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삼성처럼 단기간 준법경영체제를 다잡기 위해 외부 인사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을 꾸렸지만,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총수의 사법 리스크라는 ‘절박함’이 있었고, 삼성 내부에서도 보완점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준법경영이 빠르게 안착될 수 있었다”면서 “카카오는 아직 컴플라이언스 측면에서 어떤 점이 취약한지 파악이 필요한 상황이고, 내부에서도 준법경영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준신위는 준법 경영 체계를 정비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을 전망이다. 김범수 창업주가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철학을 견지한 점을 감안해 선한 영향력의 확대에 일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증하듯 김 위원장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카카오가 변화의 문을 연 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준법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카카오의 준법경영체계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준법 경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만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을 비롯 임직원,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듣고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정립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준신위는 외부 전문 위원단을 통해 전문강을 보강할 방침이다. 대내외 소통 강화를 위한 조직도 신설한다. 준신위의 활동 사항을 공개하는 한편 외부 의견을 듣기 위한 제보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체 안팎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
흠집난 리더십…여성 인재 전진 배치?
카카오는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이 높다.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박새롬 울산과학기술원 산업공학과 조교수가 2020년부터 사외이사로 활동해왔는데, 2명이 추가 선임됨에 따라 7명 중 4명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내년 3월 물러나는 홍은택 대표, 현재 구속중인 배재현 투자총괄대표, 윤석 숙명여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중 내년 주주총회에서 최소 2명이 교체될 경우, 여성 이사의 수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본사와 계열사 요직에 여성 인재를 전진 배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성장 일변도 중심의 전략을 타파하고, 내부 결집을 유도하려면 외유내강의 여성 리더십이 필요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IT업계는 개발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개발자의 경우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며 “외부에서 기대하는 이미지와 달리 남성적 문화가 강하다”고 꼬집었다. 연줄, 서열을 중시하기 때문에 부조리라 해도 받아들이는 특성이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 그는 “카카오는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IT업계의 단점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새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디테일하게 문제를 파고들고 섬세하게 끌어안는 여성 리더십에 주목한 이유”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여성 인재를 적극 기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알려진 최혜령 크레디트스위스(CS)상무를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최 상무는 현재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으로 구속돼 공석이 된 투자 부문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저희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니고, 사내에도 아직 별도 인사발표를 진행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다양성 측면에서 여성 인재를 적극 기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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