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포퓰리즘…교육 질 저하 우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정면 반대하고 나섰다. 범대위는 의료계와 협의하지 않은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협 차원의 총파업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당분간 의·정 갈등으로 인한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의협 범대위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1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명백한 포퓰리즘’이라며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와 의과대학생 등을 포함해 주최 측 추산으로 8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의협은 전문가 단체로서 10여 년 전부터 필수의료 붕괴를 경고해 왔다”며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반복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가 국민의 건강 피해는 외면하고 11여 년 후에 배출될 의사 증원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대사에 나선 다른 의사 단체들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정지태 대한의학회장은 “정부가 의대 정원 문제는 의료계와 합의한다는 9·4의정합의를 어기고 의과대학 대상 증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국민과 의과대학 모두 찬성하는 의대 증원을 의협만 반대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대학 폐쇄를 막을 수 있어 이득이겠지만, 한번 무너진 의료체계는 재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우냐”고 반문하며 “부족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회장은 “인구감소로 대한민국이 곧 소멸한다는 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하는 정부가 참으로 한심하다”며 날을 세웠다.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 차기 회장은 “의사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한다고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기초 교육부터 임상까지 인프라가 확충되지 않으면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의과대학생들은 무대에 올라 흰색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또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 길광채 광주 서구의사회장의 삭발식도 진행됐다.
궐기대회에 이어 참석자들은 대한문부터 서울역까지 1차 거리행진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렸다. 이어 서울 용산 대통령실까지 2차 거리행진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한파로 취소했다. 대신 이필수 회장이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낭독하고 집회를 마무리한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정부는 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2025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는 목표로 인원과 지역 등 세부 방침 마련 중이다.
2020년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했지만, 의협의 총파업으로 논의를 중단했다. 정부와 의협은 코로나19 위기가 해소된 이후 논의를 재개한다는 내용의 ‘9·4 의정합의’를 맺었다.
의협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정책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11일부터 이날 자정까지 진행한다.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으며, 향후 대정부 투쟁 방향 결정에 참고할 방침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의사들의 파업이나 집단 휴진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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