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구역 확대·흡연부스 설치 모두 채택 안돼…”인식개선 캠페인”
아주대 법전원 모의법정서 8년 만에 시민배심법정 열려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 vs “흡연할 마땅한 장소 없어”
공동주택 활성화 사례 배포 등 3건 평결…시정에 적극 반영
“안전한 수준의 간접흡연은 아예 없다. 금연아파트·구역을 확대해야 한다.”
“무분별한 금연구역 확대는 피해만 더 키운다. 흡연구역 설치가 최선이다.”
‘아파트 흡연’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열린 시민배심법정에서 양측이 주장한 금연구역 확대, 흡연부스 설치 등이 논의됐지만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시민법정은 아파트 내 흡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 흡연관리위원회 설치 지침 배포 등을 시정(市政)에 반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갈등 보다는 상호 이해가 해결책”이라는 열린 결말이다.
15일 수원시 원천동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공동주택 흡연 갈등 해법 모색’을 주제로 열린 시민배심법정은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시민배심법정은 다수의 이해가 얽혀 있거나 장기간 해결되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집단민원에 대해 법원의 형사재판 배심원 제도처럼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평결하는 제도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수원시는 평결을 행정 과정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수원시는 2011년 전국 최초로 시민배심법정을 도입했다. 이후 △2012년 115-4구역 재개발사업 승인 취소 건 △2013년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결 방안 △2015년 신분당선(정자~광교) 역명 선정 등 3차례 평결이 이뤄졌다. 까다로운 개정 심의 조건과 코로나 등으로 한동안 열리지 않다가 8년 만에 재개됐다.
이날 시민배심법정은 최선호·김영운 변호사가 판사 역할인 판정관과 부판정관을 맡았다. 또 공개모집으로 선정한 배심원 16명, 아파트입주자대표회 회장(신청인)과 흡연자(피신청인) 측 변호인 2명, 참고인 진술에 나선 관련 전문가, 방청객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심리에 앞서 판정관인 최 변호사는 “이 자리는 갈등을 표출하기보다는 서로를 어떻게 설득하고, 좋은 방향을 만들지 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수원시가 정책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많은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말했다.
주제는 ‘공동주택 흡연 갈등 해법 모색’이었고, 주된 내용은 아파트 내 금연구역 지정 범위 및 흡연 부스 설치의 실효성 등이었다. 흡연이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기본 전제로 하면서도 비흡연자 측은 권리를, 흡연자 측은 현실적 대책 미흡을 주장했다.
신청인 측 김정훈 변호사는 “WHO(세계보건기구) 발표에 의하면 간접흡연으로만 한해 5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며 “헌법재판소는 생명과 연결되는 혐연권이 사생활의 자유인 흡연권보다 우선한다고 판단했다. 안전한 수준의 간접흡연이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을 위해 △흡연자 인식 개선과 금연문화 조성 위한 캠페인 △공동주택 대면 커뮤니티 활성화 △금연아파트 내 금연구역 범위 확대 법 개정 △공동주택 층간흡연관리위 설치 권고 △자치조직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배포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피신청인 측 김한준 변호사는 “흡연자들의 금연이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해결책이지만, 당장 간접흡연으로 고통받는 주민에겐 뜬구름 잡는 얘기”라며 “무분별하게 금연구역을 확산시키면 간접흡연 피해는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흡연구역을 만드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했다.
이어 “담배로 인한 세수가 10조 원을 상회하는데 3조 원 담배 부담금 중 3% 미만 금액만이 금연정책에 배정된다. 다만 흡연부스 설치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며 흡연부스 설치 지원과 흡연구역 설치 위한 유의사항, 디자인 사례 등 가이드라인 제공을 수원시 등에 요구했다.
이어서 참고인으로 나온 전문가들은 흡연 갈등이 비흡연자와 흡연자의 이분법적 시각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내 흡연구역‧부스 설치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1년에 12조 원이고, 매년 5만8000명이 사망한다”며 “양측의 갈등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고, 흡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은지 아주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연구원은 “담배 연기는 호흡기가 약한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라면서도 “흡연 부스 설치는 반대한다. 아파트에 흡연자가 몇 명인지 알 수 없고, 내부 환기도 안 돼 관리가 어렵다. 인적이 드문 공간을 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배심원이 직접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 배심원은 “연기는 위로 올라가니 건물 옥상에 흡연 부스와 출입시스템 등록제를 설치하고, 금연아파트에 대해선 선별적으로 지원금 등 혜택을 주는 건 어떤가”라고 물었다.
이에 참고인으로 나온 수원시 장안구보건소 관계자는 “흡연구역을 만든다는 거 자체가 흡연자를 돕거나 금연사업의 후퇴를 예고하는 행위”라며 “권고하긴 어렵다”고 했다. 수원시청 관계자도 “흡연시설은 시에서 지도할 수 없다. 옥상에 설치한다 해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에 담배 냄새가 심해져 민원이 들어올 것”이라고 답했다.
이밖에 뎀퍼(공기조절판), 강력한 동력의 24시간 벤추레이터(옥상 환풍기) 설치가 환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단열과 에너지절약 등 일부 공동주택 정책과 모순된다며 한계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판정관들은 배심원들과 1시간가량 평의를 거쳐 △흡연자 인식 개선과 홍보 및 캠페인 실시 △공동주택 활성화 우수사례 선정 및 운영 가이드라인 배포 △간접흡연에 따른 예방‧조정 교육을 위한 자치조직 가이드라인 배포 등 3건을 시정에 반영하도록 평결했다.
흡연 문제는 상호 간 갈등이 아닌 이해가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알리는 데 방점을 두고, 흡연관리위원회 등 공동주택 내 설치 가능한 조직을 활성화해 상생하자는 취지다.
안건으로 함께 논의된 금연아파트 구역 확대를 위한 법 개정 건의, 흡연 관리구역 설치 권고 등은 채택되지 않았다.
수원시 관계자는 “조례에 따라 해당 부서장은 평결 내용을 최대한 반영, 수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수용 여부와 향후 처리 계획을 문서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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