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코로롱글로벌 등도 ‘PF우발채무 부담’ 평가
일부 건설사들, 사고 행정처분 리스크 따른 재무부담 가능성도
“어려운 금융환경 이어지면 상위권 건설사로 부담 확산”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시공능력 16위의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유동성 악화설에 휩싸이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따른 건설업계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태영건설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 부인하지만, 전국 아파트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가고 분양 시장이 침체되는 등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이른바 PF 우발채무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 분양 침체 속 PF대출 연체율 확대
PF는 아파트 등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사업비를 빌리는 것을 뜻한다.
사업성을 보고 대출해주는 구조상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시행사의 PF에 대해 시공사가 사실상 연대 보증인 신용보강을 하게 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으나 불황 국면에서 시행사가 부도가 날 경우 PF 대출을 보증한 시공사가 채무를 떠안게 되는데, 이를 ‘부동산 PF 우발채무’라고 한다. 현재는 빚이 아니지만 앞으로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채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부동산 PF 규모는 저금리 및 개발 수요 등으로 최근 급증한 상태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올해 9월 말 기준 134조3천억원이다. 부동산 PF 규모는 2020년 말 92조5천억원이었으나 2021년 말 112조9천억원 등으로 매년 크게 늘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말 0.55% 수준이었던 연체율은 9월 말 기준 2.42%로 올라간 상태다.
건설사들의 PF 보증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자체 유효등급을 보유한 건설사 중 PF 보증이 존재하는 16개사의 PF 보증액은 총 28조3천억원이다.
이들 기업의 합산 PF 보증은 2017∼2018년 14조8천억원, 2019년 15조6천억원, 2020년 16조1천억원, 2021년 21조9천억원, 2022년 26조1천억원으로 2020년 이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 태영건설·롯데건설 등 PF 우발채무 부담
태영건설이 지난 9월 ‘유동성 위기’ 소문에 이어 최근 ‘워크아웃설’에 휩싸인 배경도 부동산 PF 우발채무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지난 6일 발표한 2024년 산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태영건설의 PF 우발채무는 3조4천800억원이다.
보고서는 태영건설에 대해 “우발채무가 자기자본 대비 3.7배 수준으로 과중하다”며 “만기구조는 비교적 분산되어 있으나, 미착공 현장의 지방 소재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 시 사업 불확실성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태영건설의 위기 상황은 고령의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일선에 복귀하고 그룹 내 물류사업 회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을 통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에서도 확인된다.
다만 태영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설이 돌던 지난 1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PF 대출 보증 규모와 관련, “국가가 보증해주는 사회간접자본(SOC) PF 1조원과 분양이 75% 이상 완료돼 금융권이 안정적으로 보는 PF 1조원 등 2조원을 뺀 나머지 PF는 2조5천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등도 PF 우발채무로 인한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곳들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9월 말 롯데건설의 시행사에 대한 PF 우발채무를 4조9천7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자기자본에 대비해 과도한 수준”이라면서 “전체 PF보증 사업장 중 미착공 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은 분양경기 침체 국면의 높은 불확실성 상황 하에서 재무위험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앞서 롯데건설은 둔촌 주공 조합이 PF의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 차환에 실패하고 PF 리스크가 커지자 지난해 10월 자금난 해소를 위해 운영자금 목적으로 2천억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롯데케미칼로부터 5천억원을 차입하는 등의 대응 조치를 한 바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9월 발표한 ‘D(디폴트)의 공포 – 건설업은 정말 생사의 기로에 있을까’의 보고서에서 “작년 하반기에 대비 단기 유동성 리스크는 완화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전체 PF 우발채무의 80%가 미착공 사업으로 구성돼 있어 사업 진행 경과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오롱글로벌도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같은 보고서에서 코오롱글로벌에 대해 “(8월 말 기준) 미착공 PF 우발채무 규모가 6천121억원에 이르고 보유 현금성 자산은 2천377억원에 불과해 PF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자체 현금을 통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 PF 리스크 아니어도…업계 전반 재무 불확실성 증대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어도 재무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기업도 다수다.
특히 고금리 속 주택매수 심리가 하락 전환하면서 분양경기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의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 중인 아파트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들은 행정처분 수준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5일 ‘건설:점증하는 PF·유동성 리스크, 재무적 대응력이 필요한 시점’ 보고서에서 태영건설, 롯데건설과 함께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신세계건설 등을 모니터링 요소가 있는 업체로 손꼽았다.
GS건설에 대해선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관련 행정처분 결과와 영향, 신규 현장의 분양실적과 미착공 사업장의 PF 차환 여부를 주요 모니터링 요소로 지목했다.
신세계건설과 관련해서는 공사비 소요 등으로 순차입금이 지난 9월 2천374억원으로 작년 말(482억원)보다 1천892억원 확대된 점과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채무인수, 브릿지 보증 제공 등으로 PF 우발채무가 지난 9월 기준 1천억원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의 여파로 재무적 불확실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내년 전망 보고서에서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해 “화정 건설 현장 사고 이후 PF 우발채무 대응 과정에서 사업비 대여 등 자금소요에 따라 지난 9월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의존도가 21.0%로 사고 이전인 2021년(-0.4%) 대비 크게 증가해 재무안전성 역시 저하됐다”고 평가했다.
건설업계의 PF 관련 리스크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다만 공통적으로 대형 건설사보다 중소형 건설사들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며 금융환경이 악화한다면 대형 건설사로도 위험이 번질 수 있다고 본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낸 ‘2024년 주택사업 전망’에서 “대형 건설사의 PF 지급보증 규모는 확실히 금융위기 직후보다는 줄어든 상황”이라며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대형 건설사보다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중소형 건설사들이 더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도 내년도 건설·유틸리티 전망 보고서에서 “PF 관련 리스크는 상존하나 대형 건설사 재무현황 감안 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리스크 부각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는 건설사의 자금 조달 상황 및 유동성 대응 능력에 대해 “현재까지는 중견 이하 건설사의 유동성 압박이 큰 상황이나 어려운 금융환경이 이어진다면 점차 상위권 건설사로 부담이 확산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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