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영향분석은 현행 법령을 대상으로 그 집행 실태와 실효성, 법적 타당성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제도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의 졸속입법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이번 21대 국회 법안 발의 건수는 2만4506건으로 16대 국회 대비 10배가 넘는다. 이 중 헌법불합치된 법안은 올해 52건에 달한다.
박 처장은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의 실효성을 강조하면서 21대 국회 안에 여야 만장일치로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늦어도 내년 4월께 법제화해 22대 국회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박 처장이 밝힌 포부다. 다음은 박 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입법조사처장 지원 동기가 궁금하다.
“헌법학자로서 학교에서 강의하고 논문을 작성하면서 입법조사처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로망이 생겼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유럽 의회조사국(EPRS) 등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회정치를 구현하고 민주주의 입법 과정을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법조사처가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국회의원들이 좋은 법률을 만들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돕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국정감사를 지원하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법률이 적법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해답’ 절차도 지원하고 있다. 1년에 약 5000건 정도 된다. 대부분 1주일 이내로 답변을 해주는데, 만족도가 높다.”
-21대 국회에 대해 총평해 달라.
“21대 국회 초반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제시해 다당제와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을 하자는 의미로 출발했지만, 위성정당이 등장하면서 목표를 상실했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대표가 나오지 않고 양당 대결 구도만이 고착화됐다. 국회 안에서 의회정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작은 대선’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고 내년 선거가 시작하기 전까지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21대 국회 문제점은 무엇인가.
“양당의 극단적 대결 구도가 심각하다는 것 외에 국회의 권한이 작다는 점을 들겠다. 국회가 과연 실질적으로 행정부를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의 권한이 커져야 국민의 권한도 커지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대통령을 견제하는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 예산을 정할 때 혹은 법을 만들 때 행정부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16대 국회 이전에는 의원 입법보다 정부 입법이 더 많았다. 오히려 행정부가 법을 만들었다. 17대 국회부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원내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의원의 법안 발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의원의 연령층이 젊어진 것도 이유다. 17대 당시 입법 비율을 살펴보면 85%가 의원 입법, 15%가 정부 입법이었다. 지금은 무려 97%가 의원 입법에 해당한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과잉’, ‘졸속’ 입법이란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법안 발의 과정에서 다수의 힘으로 밀거나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법안은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게 된다. 발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면 졸속으로 간다는 우려가 있지만, 입법 과정에서 잘 걸러내면 될 일이다.”
-올해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법안 현황은 어떤가.
“벌써 52개다. 54개로 집계된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수치다.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헌법에 맞지 않는 법안이 많다는 증거다. 일본의 경우 국회가 생긴 이후 위헌 판결을 받은 법률은 11개에 불과하다. 법을 만들기 전 최종 작업을 끝내야 하는데, 헌재까지 끌고 가서야 법이 탄생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부실 입법이다. 국회에서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일방적으로 법을 만들다 보니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 불만이 쌓인다. 법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입법 과정에서 과학적 분석이 되지 않고 있다. 법을 잘 지킨 사람이 잘살고 못 지킨 사람이 못살아야 하는데, 법대로 해서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입법영향분석 제도 실효성을 어떻게 보는가.
“입법영향분석 절차 없이 입법 과정을 밟는 것은 중요한 부품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처럼 위험하다.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의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적극적으로 찬성한 의원도 있었지만, 입법 침해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입법영향분석은 실질적으로 법을 더 잘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절차다.”
-입법영향분석 제도화 과정은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행 중인가.
“현재 입법영향분석 관련 계류 중인 법안은 6개다. 지난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되면서 2번의 소위 과정을 거쳤다. 21대 국회에서 통과시켜보려고 한다. 최소 내년 4월 전에는 통과시킬 것이다. 국민의힘과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다. 더불어민주당과도 합의를 봐야 하는데, 9월 원내대표가 바뀌면서 합의 시기를 놓쳤다. 양당 간사를 만나 논의할 예정이다. 3차 소위를 앞두고 있는데, 조만간 결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포함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폐기되는 법안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21대 국회가 끝나면 알겠지만, 법제사법위원회만 해도 400여 개가 계류 중이다. 거대 양당만 놓고 보면 민주당이 쌓여 있는 법안이 더 많다. 정확한 통계를 뽑아야겠지만, 야당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 의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수당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법, 예산, 국정감사라고 생각한다. 입법조사처에서는 입법 지원 외에도 국회의원의 국정감사를 지원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국정감사 이슈분석’이라는 책자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내용이 제대로 처리됐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입법조사처에서는 처리 결과와 통보 내역 등을 알아보기 위해 행정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조사관들을 16개 상임위원회에 투입해 조사 작업을 펼친다. 그렇게 탄생한 책자를 의원들과 언론에 배포하고 있다. 내년에는 상반기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7~8월경 책자를 발간할 것이다.”
-최근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입법조사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소멸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광역별로 살펴보면 인구소멸 위기 1위는 전남, 2위가 경북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서 문제 해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세미나를 열었다. 지방이 살아나기 위해선 생산 인구가 들어와야 하고 중·고등학교가 살아나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광역비자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현재 비자 발급은 법무부 소관이다. 외국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학생비자 발급이 지자체에서 가능하도록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각 지자체와 중앙 부처 간 소통을 위해 국회에서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11월 22일을 그 날로 정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입법조사처를 국제적으로도 알리고 있다.
“올해 10월 중순 국제조사기구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24개국에 초청장을 보내 2박 3일 동안 진행했다. 이 행사를 기점으로 입법조사처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의회조사국 기구의 종주국으로서 매년 10월 한국에서 열 예정이다.”
-선거 제도 개편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 정기특위를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성과가 하나도 없다. 이번 국회에서는 이루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정치 개혁 입법 로드맵을 마련해 최소한의 개정 작업에만 참여할 것이다. 22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선거제도 개편이 돼야 할 것이다. 정치 개혁 공약에 합의했으면 좋겠다.”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의회정치가 복원됐으면 좋겠다. 여야 간 대결 구도보다는 서로 토론하고 타협하는 국회를 만드는 게 첫째 과제다. 둘째로는 국회 스스로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국회가 달라지려면 정치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입법조사처는 더 나은 국회를 만들기 위해 보다 전문성을 갖고 입법 지원에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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