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인권과 공정과 연대를 네 원칙으로 하고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를 근본 바탕으로 하며 과학과 기술과 혁신을 기본 동력으로 삼아 도약과 빠른 성장(목표)을 해야 한다고 취임사에서 외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0개월 되었다. 임기 60개월 중 3분의 1이 지난 셈이고 임기 말을 제외하면 거의 절반이 지나간 셈이다.
회고해 보면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이후 20개월 동안 나라 안팎은 복합 위기와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팬데믹과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간 갈등 심화, 상상하기 어려운 기후 이변에 더해 국내 참변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경제성장률은 2021년 4.1%에서 2022년 2.6%, 그리고 2023년은 1.4%로 낮아졌고 수출 증가율(통관 기준)도 2021년 25.7%에서 2022년 6.1%, 그리고 2023년 1~10월에는 -10%로 추락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1년 말 1.00%에서 2023년 11월 말 3.5%로 올랐고 주택담보대출금리(신규 기준)는 2021년 12월 3.63%에서 2023년 10월 4.56%로 올랐다. 인플레이션은 2021년 12월 3.7%에서 2022년 7월 6.3%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3.3%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생활물가는 아직도 4%를 기록하고 있다. 가계신용은 2021년 말 1862조원에서 2023년 1876조원으로 14조원 느는 데 그쳤다.
2002년 이후 들어선 각 정부의 실적과 비교해보면 경제성장률은 2.0%로 가장 낮고 물가 상승률은 4.5%로 가장 높으며 임기 내 수출액 증가 폭도 -24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되어 박근혜 정부 때 525억 달러 감소 다음으로 저조하다. 다만 임기 중 취업자 증가 폭은 147만명으로 박근혜 정부 다음으로 크고 가계대출 증가액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낮다.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했다는 점은 분명히 윤석열 정부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정도 성적이라면 A는 못될지라도 B는 된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수출과 인플레이션이다.
<수출 부진 해결>
먼저 수출은 역대 최고치인 6836억 달러를 기록했던 2022년과 달리 2023년은 62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는 2021년 수출 6441억 달러보다 낮은 수준이다. 2023년 수출이 부진한 것은 글로벌 고금리로 세계 경제가 둔화되면서 국제교역이 오히려 크게 줄었고 특히 중국 경제가 예상외로 부진하면서 대중 수출이 크게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나라 수출이 확장되려면 세계 경제가 나아지고 또 중국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2024년 세계 경제는 2023년보다 다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중국 경제 또한 2023년 5.2% 성장보다 2024년에는 4.6%로 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년 수출 여건은 금년보다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만 한국은행은 통관 기준 수출이 9.3%, 정부는 8.8%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다른 국내 연구기관들도 대부분 4-5% 정도 수출(국제수지 기준) 증가를 예측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가봐야 알 것이다.
이런 긍정적 향후 수출 실적 전망은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는 수출 증대에 올인(all-in)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1호 영업사원이라는 각오로 쉴 새 없이 외국 현지로 순방을 다녔고 정부 전 부처에 대해 수출영업사원이 되어야 한다고 독려했다. 수출전략 회의만 5차례 개최했고 최근에는 2차 방산수출전략회의를 판교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비상경제장관회의와 수출투자대책회의도 금년 중에만 열네 번 이상 개최했다. 경제정책 부처도 5대 분야, 즉 주력 산업, 해외 건설, 중소벤처기업, 관광콘텐츠 분야, 디지털, 바이오, 우주 분야 수출 경쟁력 방안(2023년 상반기)을 내놓기로 하고 360조원에 달하는 획기적인 무역금융을 제공하고자 약속했으며 10대 수출 유망국을 선정하고 원스톱 수출 119센터들을 개설하였다.
중요한 것은 수출 실적이다. 2018년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수출 9대 품목의 2023년 1-10월 수출 실적은 아직 100에 훨씬 못 미친다. 반도체가 들어 있는 전기전자(HSK분류번호 84)도 75.3%, 기계류(84)는 75.2%, 플라스틱류(39)는 84.2%, 철강(72)은 87.9%, 유기화학(29)은 69.2%, 광학기계(90)는 49.6%, 선박(89)은 76.4%, 그리고 석유제품(27)은 93.3%에 그치고 있다. 오직 차량(87)만 123.5%로 2018년 수준을 웃돌고 있다. 앞으로 두 달간 실적이 더해진다 하더라도 차량과 석유제품 부문을 제외하면 100을 밑돌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8년부터 5년 동안 거의 대부분 부문에서 수출이 역성장해왔다는 것은 한국 경제 미래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철강, 화학, 기계, 플라스틱, 전기전자 등 전통 산업의 수출이 구조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수출 촉진 혹은 수출 활성화 대책은 수출금융 지원 확대나 수출시장 확대, 수출 바우처 지원, 수출 인프라 지원과 같은 표피적인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 수출 경쟁력 제고 정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철강, 화학, 기계, 전기전자 등 전통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는 대책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산업 대전환 전략이나 5대 분야 수출 경쟁력 방안에는 전통 산업의 기술력을 제고하고 설비를 현대화하는 중장기 실질적인 정책들이 많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 해결>
인플레이션 해결 문제는 수출 활성화보다는 쉬워 보인다. 일단 6%를 넘던 소비자물가는 최근 3.3%로 가라앉았고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도 최고치인 4.3%에서 3.0%로 크게 낮아졌다. 그동안 국제 원자재 가격도 많이 낮아졌고 국내 금리도 크게 오르면서 소비수요가 많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니다. 언제라도 국제 원자재 가격이 반등할 수 있고 또 인건비 상승 압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섣불리 기준금리를 내렸다가는 다 잡아가던 인플레이션을 다시 놓칠 수가 있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