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취임 만 5년을 넘긴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공격 경영을 예고했다. 미래, 성과 그리고 혁신에 방점을 찍고 경영진 재편을 단행해서다.
‘인화’의 상징으로 불렸을 정도 LG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까지 5번의 임원인사를 통해 이 같은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최대 6명에 달했던 부회장단을 3명까지 줄였고, 40대 임원의 비중을 늘렸다. 외부 영입과 여성 임원 발탁을 통해 순혈주의와 보수적 색채를 누그러뜨렸다.
올해 구 회장은 한층 독한 선택을 했다. 신규 임원의 97%를 1970년대생 이후 출생자로 채웠다. 특히 1970년생인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의 발탁은 파격에 가깝다. 최고경영자(CEO)들도 구 회장의 사람들도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구본무 선대회장의 가신으로 불렸던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물러나게 됐다.
다만 구 회장이 발탁한 CEO라 해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것은 아니다. 부회장 승진이 점쳐졌던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고배를 마셨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은 새 사령탑을 맞았다.
세대교체와 친정체제의 완성, 이를 통해 구 회장이 조직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라’는 것이다. 부회장단이 2명으로 줄어듦에 따라 구 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은 더욱 증대됐다. 총수의 구상에 따라 사업 재편과 투자, 인수합병(M&A) 등이 이뤄질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이에 따라 그룹의 청사진에 부합되고, 해당 경영진의 직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음을 알렸다.
재계에서는 LG그룹의 사업 재편이 이전보다 공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고객가치’를 강조하며 소비자의 니즈를 주요 사업에 녹여 경쟁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해왔다. 전자와 이동통신, 화학 등 제조업 DNA가 강했던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등 ABC 중심으로 바꿔가고 있다. 인적 쇄신을 통해 변화 동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을 보여준 만큼 LG그룹이 신사업 진출, 해외 진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LG그룹에 따르면, 전날 LG전자를 끝으로 그룹의 임원인사가 마무리 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장단 이상 최고경영진의 재편이다. 권영수·박진수·조성진·차석용·한상범·하현회까지 구 선대회장의 사람들로 꾸려졌던 부회장단에는 권봉석·신학철 부회장만 남았다. 두 사람 모두 구 회장이 발탁한 인물들이다.
LG에너지솔루션,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CEO들도 교체됐다.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 외에 2개 계열사 수장을 바꾼 것은 이채롭다. LG에너지솔루션은 권 부회장의 경영 감각과 위기관리 능력 덕분에 승승장구 했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500조원에 달하는 수주를 확보했다. LG이노텍도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며 외형 성장을 지속했다. 성과를 달성한 계열사 CEO 교체는 구 회장이 중장기 잠재력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뜻한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그룹 내에서도 손꼽히는 배터리 전문가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신임 사장은 기업간거래(B2B) 사업과 IT 분야 전문성을 지녔다. 문혁수 LG이노텍 부사장은 개발과 사업, 전략을 두루 거친 차세대 경영인이다. 세 사람은 전사 경영 전략에 대한 이해가 높고 기술 전문성까지 갖춘 인재들이다. 본업 경쟁력 향상과 신사업 확장의 적임자인 셈이다.
CEO가 유임된 계열사들도 미래 준비를 위한 포석을 깐 것으로 분석된다. ㈜LG,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의 CEO는 이번에 재신임을 받았는데, 업의 특성에 맞는 신성장 엔진을 확보하라는 주문이 담긴 인사로 풀이된다. ㈜LG는 지난 2021년 경영전략과 경영지원체제를 개편한 뒤 신규 사업 발굴과 투자에 나서고 있다. LG전자, LG화학,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은 유망사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 대전환이 진행 중이다.
CEO를 보좌할 핵심 경영진 또한 전문성과 성장 가능성을 지닌 인물들을 발탁했다. 기술 리더십을 제고하는 동시에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꾀한 것이다. 사장단에 합류한 4명은 모두 1960년대 출생자다. 박형세 LG전자 HE 사업본부장은 1966년생이고, 정대화 LG전자 생산기술원장은 1963년생이다. 김인석 LG스포츠 대표와 김영민 LG경영연구원장은 1961년생이다.
특히 신규 임원의 97%(96명)가 1970년 이후 출생자로 나타났다. 올해 신규 임원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와 같은 49세, 다만 승진 규모가 지난해(160명) 보다 줄어든 139명으로 그친 데다 신규 임원(99명) 수으로 전년 대비 13.2% 감소하면서 ‘젊은 피’의 비중이 커졌다. 게다가 1980년대생 임원 5명이 발탁되면서 젊은 인재 발탁 기조가 강해졌다는 평가다.
R&D 임원을 늘린 점도 눈에 띈다. 올해 전체 승진자 중 31명을 R&D 임원으로 채웠다. 특히 미래먹거리로 낙점한 ABC 사업과 소프트웨어(SW)에서 각각 16명, 8명의 인재가 발탁돼 신성장동력 분야에서만 총 24명이 승진했다. 이에 그룹 내 R&D 임원 규모는 역대 최대인 203명이 됐다.
경직된 조직문화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도 이어졌다. 전체 승진자 수가 줄었음에도 지난해와 같은 동일한 9명의 여성 인재를 R&D·사업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탁했다. 구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9년 29명에 그쳤던 여성 임원은 61명으로 두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외부 인재 영입도 활발했다. 홍관희 LG유플러스 사이버보안센터장(전무), 진요한 LG CNS AI센터장(상무) 등 총 15명이 LG에 합류했다.
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새로운 시각에서 외부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전문역량을 빠르게 보완하기 위해 여성인재와 외부인재를 기용했다”며 “이번에 선임된 경영진들은 고객가치 철학을 구현하고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내년 더욱 자신의 경영 기조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구 회장의 의도대로 사업 재편과 조기 성과 달성을 위해서는 조직 문화도 쇄신이 필요하다. 주요 계열사들이 스타트업식 문화를 이식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인사와 보상체계를 과감하게 손질할 수 있다는 의견에 제기되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총수의 지배력이 강화되면 더욱 진취적인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40대 젊은 총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업 외에도 조직문화까지 과감하게 바꾸는 작업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면서 “근속연수와 관계없이 ‘성과를 낸 만큼’ 연봉, 승진 등에서 보상해주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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