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안건이 가결돼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화물 매각 이행 여부를 지켜본 후 최종 승인을 결정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을 내걸면 이관 항공사 선정이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연식이 30년 가까이 된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를 이관받을 국내외 항공사가 나타나지 않을 우려도 적지 않다. 유나이티드항공 등 현지 항공사의 반발이 있는 미국 역시 EU보다 강력한 독과점 해소 방안을 요구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해외 기업결합 심사가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미래 불확실성만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음달 초 이사회 재개…화물사업 인수 항공사 선정 ‘과제’
31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다음달 2일 임시이사회를 다시 열고 EC에 제출할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에 대한 동의 여부’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0일 서울 도심 모처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화물사업 매각 논의를 이어갔지만 오후 9시 30분까지 가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정회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 전 임직원의 안정적 고용 보장과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모든 안건에 대해 토의를 거쳐왔다. 특히 화두가 된 화물사업부 매각이 포함된 시정조치안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물론 아시아나항공 임원 및 노동조합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등 해당 안건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일부 사외이사들이 화물 사업 매각 시 주주에 대한 배임 소지와 노조 반발 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가운데 한 명인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의 표에 대한 유효성 문제도 지적됐다. 김앤장은 법률사무소는 양사의 합병과 관련해 대한항공 측에 법률 자문을 해 왔다. 매각에 찬성하는 이사는 서둘러 대한항공의 자금을 수혈받아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사회의 매각 결정에 따른 손해, 주주가치 훼손 비판을 면하기 위해 시간끌기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유럽 시간으로 이달 31일까지 화물사업 매각 방안이 담긴 시정조치안을 제출해야 했다. 대한항공은 EC 측에 양해를 구하고 시정방안 제출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다. 시정안을 제출하지 못해 합병이 무산되는 최악의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지난 30일 이사회는 일부 이사들간 이해충돌 이슈 등에 대한 의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안건 의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정회된 것으로 이사들의 일정을 조율해 11월 초에 정회된 이사회를 다시 열고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사회의 화물사업 매각 안건이 승인돼도 난관은 남아있다. EU는 2차 심사 기한을 지난 7월에서 8월로 한 차례 연장했고 재차 10월로 연기했다. EU 측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고려하면 화물, 여객 중복 노선에서 추가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실제 EC는 “화물사업 이관 항공사를 선정해도 합병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EU가 화물 매각 이행 여부를 지켜보고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을 하게 될 경우 내년 1월 이후부터 화물 사업을 이관받을 업체를 모색하는 것이 숙제로 떠오르게 된다. EU는 화물사업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급의 항공사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가운데서는 에어프레미아와 이스타항공, 에어인천이 후보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사업 규모, 재정능력을 보면 EU의 기준에 미달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국제선 화물기 운송량은 53만5171톤으로 에어인천(3만7783톤), 에어프레미아(3834톤)와 차이가 크다.
설립 6년째인 에어프레미아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스타항공과 에어인천은 130억~190억원 수준의 수익에 그치고 있다. 화물은 장기간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업이어서 국내 신생 저비용항공사(LCC)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인수에 뛰어들지도 미지수다.
◆美·日 승인도 남아…DOJ 벽 넘어설까
해외 항공사에 화물사업을 넘긴다고 해도 글로벌 항공사들이 화물운송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도 봐야 한다. 아시아나항공기의 화물기는 11대로 대부분 기령이 27~28년이다. 항공기는 제작 후 20년이 지나면 노후화된 기재로 분류되고 30년이 되면 퇴역한다. 노후 기재를 구매하면 운영비용과 부품 교체비용이 크게 소모돼 외항사들이 진입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승인도 남겨두고 있다. 합병사의 독점 우려가 있는 미주 노선은 5개(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다. 샌프란시스코는 유나이티드항공이, 호놀룰루는 하와이안항공이 유일한 경쟁자로 점유율이 20%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대한항공(델타항공 포함)과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한다.
미국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은 미국 법무부(DOJ)에 합병에 부정적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경쟁 제한 해결을 위해 에어프레미아를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DOJ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은 EU, 미국의 승인 여부에 따라 결론을 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합병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전해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 능력만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산업은행은 합병 불발 시 추가 지원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부 매각을 찬성하면 15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한 이자비용을 고려하면 부담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의 올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600억원으로 12조원 수준의 부채에 이자 비용만 2000억원대가 발생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만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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