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스 안정 공급 논의”…중동 ‘탈석유 경제’ 파트너로
‘중동2.0’ 새판짜기…신에너지·원전·스마트팜으로 인프라 협력 고도화
사우디 300억달러 MOU ‘액션플랜’·카타르 LNG선 대형 수주 기대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이슬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중동 지역 핵심 교역 파트너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국빈 방문길에 오르는 가운데 이번 순방을 통해 에너지 안보 강화와 ‘신(新) 중동붐’으로 불리는 중동과의 새로운 협력이 모색될지 주목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뤄지는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 90%가 넘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또 중동 주요국이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새 경제 틀을 마련하는 데 천문학적 ‘오일 달러’를 쏟아붓는 상황이어서 ‘탈석유 경제 건설’의 주요 파트너로서 한국이 이들 나라와 경협 지평을 넓혀 ‘중동 2.0 시대’의 새판을 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 에너지 안보 시대…공동개발 등 논의 가능성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이날부터 4박 6일간 일정으로 방문하는 사우디와 카타르는 작년 기준 한국의 7위, 18위 교역국으로 16위인 아랍에미리트(UAE)와 더불어 중동 지역의 중요 협력 대상국이다.
더욱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에 두 나라는 단순 교역액으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중요 상대국이다. 사우디와 카타르 두 나라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만 해도 원유 38%, 가스 21%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 사태를 겪으며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급부상했다.
윤 대통령은 제1의 원유 도입국인 사우디와 주요 가스 수입국인 카타르를 방문해 안정적 원유·가스 공급 방안을 논의하고 국제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한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략비축유 방출 가능성까지 점검 중인 가운데 윤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석유·가스 우선 구매권 확보나 공동 시추·개발 추진 등 성과가 나올지도 관심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1월 UAE 국빈 방문 때 UAE로부터 400만배럴 석유 우선 구매권을 확보하는 국제공동비축사업 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있다.
조상현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자원의 안정적 확보는 우리나라 산업과 경제의 버팀목이기 때문에 현재의 국제 정세 속에서 이와 관련한 새 공간을 열어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 ‘탈석유’ 꿈꾸는 중동…그린수소에서 바이오까지 협력 넓어진다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없는 미래’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괄목할 ‘압축 산업화’를 이뤄낸 한국과 이들 국가 간 협력이 기존의 플랜트 중심에서 신에너지·원전·스마트 팜·IT·바이오 등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중동 2.0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사우디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 주도로 에너지원 다각화, 제조업 육성 등 산업 다변화를 통해 경제 구조 틀을 일신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35년까지 공장을 기존 1만여개에서 3만6천개로 확대하고, 국가 프로젝트로 주도하는 신도시 사업인 ‘네옴시티’ 등 인프라 건설 사업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도 막대한 투자가 계획돼 있다.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사우디는 국가 차원에서 2030년까지 태양광 40기가와트(GW) 등 58.7GW의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시설 건설을 목표로 한다.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 생산도 대규모로 추진된다. 네옴시티에 50억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 규모 그린수소 생산 시설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에너지 구성비(믹스) 다변화 차원에서 원전 건설도 상당 규모로 추진돼 UAE 바라카 원전에 이어 추가 중동 지역 원전 수출이 사우디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12조원을 투입해 설비용량 2.8GW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입찰 단계로 한국과 러시아가 2파전 구도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 네옴시티 개발 참여 가시화 기대…”중동, 수출 플러스에 중요”
산업화 대전환을 꿈꾸는 사우디 등 산유국들에 한국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은 이상적인 ‘롤 모델’로 인식된다.
더욱이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석유화학·철강 등 중공업, 화장품·식품 등 소비재, 정보통신(IT)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풍부한 가치사슬을 보유한 독보적 나라라는 점에서 산유국들의 ‘탈석유 혁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할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9일 “첨단 제조 기술력과 산업 발전 경험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산업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는 중동 국가에 최적의 파트너”라며 “에너지, 건설 등 전통적 협력 분야와 함께 전기차, 조선, 스마트팜, 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 지평을 넓히겠다”고 강조했다.
산업 구조 전환을 위한 중동 산유국들의 대규모 투자가 서서히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중동 주요국 수출도 이미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제2의 중동 붐’이 점차 가시화하는 듯한 모습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해외 건설 프로젝트 수주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5% 느는 데 그쳤지만, 사우디 수출은 62억달러로 107% 급증했다. 현대건설이 지난 6월 역대 사우디 수주 사업 중 최대인 50억달러 규모의 아미랄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를 한 영향이 컸다.
업계에서는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통해 작년 빈 살만 왕세자 방한을 계기로 양국이 맺은 300억달러 규모의 MOU 이행에 관한 구체적 ‘액션 플랜’ 마련에 속도가 붙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당시 MOU 중에는 5천억달러(약 676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것으로 알려진 네옴시티 건설과 관련된 고속철, 그린수소 플랜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포함됐다.
카타르 국빈 방문을 통해서는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 계약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바다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전이 발견된 카타르는 LNG 수송선단 확충을 대규모로 추진 중이다.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는 2020년 국내 3대 조선사와 100척이 넘는 LNG 운반선 건조 슬롯 계약(독 선점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해 말부터 실제 발주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와 카타르 등 중동 지역은 우리나라의 수출 플러스 달성에 중요한 지역”이라며 “기존 제조업 중 자동차와 건설장비 외에도 방위산업과 바이오, 디지털, 스마트팜 등 신산업 분야로도 수출 다변화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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