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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득세가 많이 들어와 재정자립도가 높은 시에서도 재정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실한 기업이 역내에 있어 ‘부자 지방자치단체’로 불리던 곳들도 기업의 실적 악화에 큰 폭의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경기 화성시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49.5%에 달해 지방교부세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지난해 기준 5594억 원에 달했던 법인지방소득세가 있다. 화성시의 지방세수 중 법인지방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4.6%였는데 이 금액이 내년에 절반인 2600억 원으로 줄어들면 지자체가 추진하던 각종 사업들도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천시나 광양시처럼 특정 대기업이 지방재정의 대부분을 맡던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타격이 더 크다. 지난해 기준 이천시의 지방세수 가운데 지방소득세 비중은 67%이고 광양시는 55.1%였는데 이는 SK하이닉스와 포스코의 지분이 컸다. 법인지방소득세 비중이 각각 48.6%, 42.2%나 됐기 때문이다. 개인이 내는 지방소득세와 달리 법인지방소득세는 법인이 각 사업장 소재지에 종업원 수와 건축물 연면적을 1대1로 안분해 지자체에 납부한다. SK하이닉스의 사업장 대부분이 이천에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이천의 재정에 곧바로 투입되는 구조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2021년 12조 4103억 원에서 지난해 7조 66억 원으로 줄어들고 급기야 올해에는 8조 6223억 원 적자(증권가 컨센서스)로 돌아섰다. 실적에 따라 한 해 뒤에 내는 법인지방소득세도 덩달아 줄며 이른바 부자 지자체에서도 재정 한파가 찾아오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하이닉스처럼 큰 법인이 있어 따뜻한 재정 운용이 가능했던 지자체일수록 체감되는 세수 부족이 더 클 것”이라며 “재정안정화기금을 가지고 있던 지자체라면 상황이 나은데 그렇지 않은 곳은 올해 세수 펑크와 내년 법인지방소득세 감소로 2년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43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재정안정화기금이 없는 지자체는 19곳(8월 기준)이다. 재정안정화기금은 지자체가 여유 재원이나 예치금을 모아놓는 일종의 비상금으로 조례에 따라 비상시에 안정화기금의 50~70%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안정화기금은 지자체 안에서만 쓸 수 있다. 결국 안정화기금이 없는 지자체는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거나 기존 사업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행안부는 일선 지자체에 한시적으로 지방채 발행 한도를 증액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법인세를 기초지자체 세원으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현행 지방세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기초지자체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만큼 개인의 지방소득세·재산세와 달리 안정적인 세수 관리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세는 지방 공공재를 공급해야 하는 만큼 안정적인 세수가 필수”라며 “법인이 잘나갈 때는 타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다가 실적이 좋지 않아 세수가 줄어들면 지방채 발행도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대처 방법이 아예 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기업을 직접 도와줘 실적을 개선하도록 하는 게 세수 확보의 지름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필요한 행정절차 등을 줄여줘서 기업 활동에 활력이 돌도록 지자체가 나서는 식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감세, 규제 혁파 등을 통해 기업을 도와주면 중장기적으로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나 지자체 세원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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