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중 마지막까지 대규모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해온 일본은행(BOJ)이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었지만 엔화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원화약세로 890원대로 내렸던 원/엔(100엔 기준) 재정환율이 최근 910원대로 올랐지만 엔화가 근본적인 강세로 돌아섰다고 보긴 무리라는 해석이다. 시장에선 일본은행이 ‘나홀로 완화’ 정책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연말로 갈수록 엔화가 강세를 띌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6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 4일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닫은 오후 3시30분 기준 919.77원으로 전 거래일(904.89원)보다 14.88원 올랐다. 지난달 31일 899.6원까지 내렸던 것을 감안하면 4거래일 만에 20.17원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보기엔 무리라는 해석이다.
최근 원/엔 환율 상승이 엔화 값이 오른 데 따른 것이 아니라 원화 가치가 내린 영향이기 때문이다. 엔화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기준 환율인 달러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계산한다. 다시 말해 이 기간 달러 대비 원화값이 하락하면서 엔화 대비 원화 가치도 덩달아 내렸다는 의미다.
이는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 곳인 피치(Fitch)가 지난 1일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데 따른 결과다. 2011년 이후 12년 만에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외환시장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퍼지며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값이 떨어진 것이다.
실제 원/달러 환율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진 뒤 2%(1일 1283.8원→ 4일 1309.8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원/엔 환율 상승률(2.2%)과 비슷한 수준이다. 달러화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는 이 기간 달러화 대비 큰 변동(1달러당 142.295엔→142.565엔)이 없었다.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서울 시내 환전소 환율 정보판 모습. 2023.7.24/뉴스1판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처럼 엔화가 여전히 약세를 보이는 건 일본은행의 수익률곡선관리(YCC) 정책 유연화를 두고 본격적인 긴축 시작으로 보긴 어렵다는 시장 해석이 힘을 얻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달 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목표치인 연 0.5%를 초과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일부 용인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행은 원래 장기금리가 상한선인 연 0.5%를 넘어가면 국채 매입에 나서며 금리 상승을 방어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장기금리가 급변동하지 않는 한 연 1%까지 오르더라도 공개시장조작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상 장기금리를 연 0.5%에서 연 1%로 인상한 셈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번 결정을 두고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실제 일본은행은 YCC 유연화 조치 발표 이후 신규 발행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치솟자 임시 국채매입 공개시장 조작을 2차례나 단행했다. 앞서 밝힌 국채 수익률에 대한 ‘유연한 운용’ 방침과 반대로 국채 금리가 YCC 수정 영향으로 튀어 오르자 즉각 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동안 엔화 약세가 이어지더라도 연말로 갈수록 엔화 강세 압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현재 엔화가치는 적정수준 대비 30% 가량 저평가된 상황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미국 채권금리 하락과 균형환율 괴리 심화에 따라 앞으로 엔화 강세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일본은행의 뚜렷한 긴축 기조로의 변화는 연말에서 내년 초 가시화될 전망”이라며 “엔화 강세폭이 확대되는 시점은 올해 4분기가 유력하며 엔/달러 환율이 4분기에는 130엔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 등 해외 투자은행(IB) 역시 앞으로 일본은행이 점진적으로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시점에 차이가 있을뿐 연말로 갈수록 엔화가 다시 강세로 방향을 틀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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