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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병, 고칠 수 있을까?”…’반도체 신화’ 황창규의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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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대기업병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

황창규 전 KT 회장(70)은 14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출판사 시공사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조직관리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국내 메모리 반도체 D램 개발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초대 국가 R&D(연구개발) 기술전략단장과 KT 회장을 역임하고 3년 전 경영 일선에서 내려왔다. 은퇴 후 연세대에서 진행한 특강을 엮어 ‘황의 법칙’이란 책을 펴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위임”…이건희 회장에게 배운 경영철학

인터뷰에서 황 회장은 경영전략 용어인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수차례 언급했다. 우리말로 ‘위임’을 뜻하는 단어인데, 업무 수행을 위해 리더(관리자)가 조직원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수동적이고, 개인·조직의 안전만 추구하는 이른바 ‘대기업병’ 치료를 위해 황 회장이 제시한 처방전이다. 황 회장은 책에서도 기술만큼 ‘조직의 파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황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73,400원 ▲1,500 +2.09%) 회장의 임파워먼트를 통해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엄청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던 초기 이 회장이 미국의 연구원인 황 회장을 수차례 찾아가 영입한 건 유명한 일화다. 황 회장은 “이 회장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 이 회장에게 배운 최고의 경영철학”이라고 말했다.

임파워먼트에 대해 황 회장은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가 웨이퍼(반도체 실리콘 원판)을 8인치(200mm)에서 12인치(300mm)로 확대한 사례를 소개했다. 웨이퍼 면적을 넓히면 공급량이 늘지만 효율이 문제였다. 생산라인을 구축하는데 수조원이 투입되고, 실패하면 삼성전자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도전이었다.

황 회장은 “(나에게)도전할 기회가 생겼으니 정말 죽기살기로 뛰었다. 경영자가 먼저 믿음을 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조직의 어느 자리에 있든 더 큰 성장을 하려면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MZ세대(1980~200년생)의 퇴사와 이직문제에 대해서도 임파워먼트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일 말단 직원에게도 팀장 정도의 역할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스티브 잡스와 담판벌인 배짱, 기술력 있었기 때문”

황 회장은 단단한 조직문화가 갖춰지면 기업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대책으론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술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삼성전자가 낸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인텔 등 경쟁사보다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 개념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도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황 회장은 1999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업부장을 맡고 3년 뒤 황의 법칙을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황의 법칙을 지켜오면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벌였다. 당시 텍스트(문자)에서 사진·동영상 등으로 메모리 처리 용량이 요구되던 시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창규 전 KT 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황 회장은 고(故) 스티브 폴 잡스 애플 CEO(최고경영자)와 담판을 벌일 수 있었던 자신감도 기술력에 있다고 했다. 그는 2005년 MP3 플레이어의 하드디스크를 플래시 메모리로 대체하는 문제로 잡스와 담판을 벌였다. 공급가격에 대한 이견 때문에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황 회장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다. 한 차례 약속을 일부러 취소하고 두 달 뒤에 다시 만나 협상을 체결했다.

기술력을 바탕에 둔 ‘파괴적 혁신’ 사례로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소개했다. 삼성전자가 1990년대 후반 출시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는 당시 대용량화가 어려운 노아(NOR) 플래시 메모리보다 저렴하면서도 대용량으로 사용할 수 있어 빠르게 시장을 넓혀갔다. 낸드 메모리가 도입되고 노아 메모리는 사실상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황 회장은 “빠르게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론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주목받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등 차세대 제품을 손꼽았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이다.

미·중 패권전쟁, 결국 기술력 싸움…차별화된 기술위해 도전해야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반도체 기술패권 전쟁전쟁에서도 결국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살아남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요 경쟁 국가로 지목된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을 강조했다. 황 회장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대책을 묻는 질문에 “우리만의 차별화된 정말 기술 제품을 가지고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조직문화가 갖춰져야 하고 이를 통해 위기도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AI와 차량용 반도체 등 수급이 회복되는 사이클(시기)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반도체가 안좋아 지면서 경제에 큰 타격이 있다”며 “사이클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회장은 반도체 산업계에 계속해서 도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앞서서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줄어든다”며 “항상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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