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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A씨(39)는 최근 17개월 된 딸의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을 하려다 깜짝 놀랐다. 6개월 뒤인 12개월에나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만 해도 약 3개월이었던 대기 기간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소아 진료뿐 아니라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까지 더 어려워졌다.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기 위해서는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검진 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의료계에선 검진에 드는 노동 대비 검진비가 턱없이 낮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영유아 건강검진을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성장 단계별 건강검진 프로그램이다. 발육지연, 과체중 등 아이의 성장과 발달 이상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 건강검진을 하지 않을 경우 특별한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입소 시 영유아 건강검진 결과표를 요구한다.
2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소아청소년과 진료뿐 아니라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을 위해서도 이전보다 대기를 길게 해야 한다. A씨가 다니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경우 연초 3개월 정도였던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 대기 기간이 이달 6개월로 길어졌다. 통상 영유아 건강검진의 경우 시간이 진료 대비 시간이 오래 걸려 예약으로만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영유아 부모 B씨도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표를 어린이집에 내야 하는데 병원 예약이 금방 끝나버려 검진 받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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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선 검진비가 너무 낮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영유아 건강검진 자체를 기피하는 게 검진 받기 어려워진 이유라고 본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영유아 건강검진이 2007년 시작됐는데 그 사이 검진비용이 한 번밖에 오른 적이 없다”며 “검진이 진료보다 몇 배 더 힘들지만 비용은 2만~3만원에 불과해 모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하기 싫은 검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의원에서도 일정 시간만 예약을 받아 부모들이 검사를 받기 더 어려워진 것”이라며 “수가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도 “영유아 검진에 소요되는 시간에 비해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굳이 영유아 검진을 할 동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소 1~2분이면 되는 진료의 경우 받는 비용이 1만8000원가량이지만 영유아 검진은 3만원 내외이고 길게는 15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고 인력도 더 많이 든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1시간에 3명의 영유아 검진 예약을 받고 있는데 검사비용이 낮아 영유아 검진만 하게 되면 병원이 망하게 된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외에 일반의원이 영유아 건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된 점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영유아 검진을 기피하도록 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상당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저수가 등으로 폐업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진료와 영유아 검진이 더 어려워진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연구원의 2022년 서울시 개인병원 현황 조사에서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줄어든 진료 과목은 소아청소년과였다. 2017년 521개에서 2022년 456개로 1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정신건강의학과가 76.8%, 마취통증의학과는 41.2%, 흉부외과는 37.5%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확보율도 2020년 68.2%에서 2022년 27.5%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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