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파장 우려 등을 이유로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때 입증책임을 피해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에 사실상 반대한 것과 달리 여야는 법안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아주경제가 입수한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제2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 22일 여야는 한목소리로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정위 의견을 질타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공정위는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때 입증책임을 피해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들에 대해 사실상 반대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입증책임 전환 입법례가 드물고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에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측이 제안한 입법 청원안을 비롯해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 박용진·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차량 결함 원인을 운전자가 아닌 제조사가 입증하는 ‘입증책임 전환’을 골자로 한다.
지난 22일 소위원회 회의 당시 공정위 관계자가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이기 때문에 수용이 곤란하다”고 하자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반적인 소비자가 급발진 사고라고 느꼈으면 그 규명 자체를 소비자에게 두는 것보다, 차량의 제조사에게 두는 게 맞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가 “세계적으로도 입증책임과 관련해 ‘피해가 있다’는 주장 만으로 제조사에게 입증하라는 입법례가 없다”고 반박하자 박 의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바라봤을 때 청원이 많이 올라온다는 것은 운전자가 입증책임 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거 아니냐”며 공정위의 소극적 태도를 꼬집었다.
같은 당 윤영덕 의원은 “자꾸 입법례가 없다는 말씀하지 마라”라며 “우리가 입법례를 만들 수는 없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제조물 결함의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진다고 하면 그 원인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냐”고 물었다. 이에 공정위가 “당연히 제조사야 그런 자료들을 다 갖고 있으니까…(도움이 된다)”고 답하자 윤 의원은 “그러면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지는 게 더 낫지 않냐”고 발끈했다.
윤 의원은 이어 “피해자가 급발진의 원인을 밝혀내는 경우가 극히 드무니까 제조사에게 결함이 없다고 하는 것을 입증하라고 해주면 훨씬 더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데 있어서 용이하지 않겠냐”며 “또 하나는 지금 현재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려면 보다 더 피해자에게 유리한 입법 환경이 조성돼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운전자 입증 부담이 줄어들면 급발진 의심 신고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면서 산업계 쪽의 부담이 가중될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자 여야 의원들은 더욱 언성을 높였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공정위는 완전히 제조사 편이다, 이렇게 밖에 볼 수 없다”라며 “택시기사가 부웅 떴다. (제조사가) ‘액셀레이터 밟아 놓고는 거짓말하는 거야. 네 인생 망가지더라도 네가 책임져’ 이런 식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불확실함 속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은 지금 그것을 만들어서 파는 제조사”라고 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이제 발상의 전환을 바꿔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배가 물 밑으로 가라앉아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 선장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계속 불안하지 않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게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까지 등장하는 등 기계 의존도가 높아진 시대에는 소비자 입증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입증책임 전환 얘기가 수십 년 전부터 나왔다”며 “지금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까지 나오는 등 산업 생태계가 전환되면서 입증책임도 전환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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