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성공신화 뒤로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광주 ‘1913 송정역시장’
각종 활성화사업 진행되며 한때 방문객 10배·매출액 5배 이상 뛰어
행정 주도 사업 한계 보이며 하락세 전환…전문가들 “근본적 대책 필요”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광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송정역시장은 최근 가장 뜨거운 전통시장 가운데 하나였다. 대기업과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방문객이 급증했고 연일 성공사례로 언론에 소개됐다. 실제 송정역시장은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면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줬고 매출액도 거짓말처럼 급증했다.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 전통시장에 ‘깨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을 해왔던 전국 자치단체들의 벤치마킹을 위한 발걸음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성공 신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기업과 행정의 지원이 줄고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예년의 평범했던 전통시장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다. 짧은 기간에 송정역시장이 보여준 부침은 전통시장 활성화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송정역시장은 1913년에 개통된 송정역과 함께 형성된,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의 주요 전통시장 가운데 한 곳이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이 한 곳에 집적화돼 있으면서 각 상점이 미로처럼 연결된 형태인 것과 달리 160여m 구간의 길을 따라 양쪽으로 가게가 늘어서 있는 독특한 구조다. KTX 송정역에서 3분 거리에 있어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꾸준히 찾아오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고 고객들이 대형 마트와 백화점 등으로 떠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모든 전통시장이 겪어야 했던 공식과 비슷한 경로였다.
송정역시장은 2015년 광주 광산구가 한 대기업과 함께 전면적인 활성화사업에 나서면서 극적인 변화의 주인공이 됐다. 이름은 ‘1913 송정역시장 활성화사업’이라고 붙였다. ‘1913’은 송정역시장이 1913년 10월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을 상징하면서 100년 넘은 오랜 역사의 전통시장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시장 자체브랜드 개발, 상인역량 강화 등의 사업과 함께 대대적인 시장 인프라 정비가 시작됐다. 60여억원을 들여 상인교육관과 공중화장실을 짓고 107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타워를 세웠다. 주말이면 버스킹을 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을 만들고 화려한 야간 조명시설도 설치했다. 지저분한 전선과 통신선을 모두 지중화하고 바닥도 걷기 좋은 길로 바꿨다. 청년상인 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10명을 모집한 뒤 빈 점포를 리모델링해 싼 가격에 임대했다. 주로 노년층이 운영하는 점포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품목과 영업 방식을 선보임으로써 활기를 불어넣어 보자는 취지였다. 대를 이어서 가게를 운영하는 곳을 찾아내 ‘100년 가게’로 지정하고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옛 간판과 점포 형태를 보존·복원했다. 떡갈비, 육전, 우리 밀 빵·국수 등 지역의 특색을 살린 풍성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할로윈파티, 맥주축제, 어린이 사생대회, 전시회 등을 개최해 즐길 거리를 늘렸다. 마케팅과 홍보도 대폭 강화했다.
거짓말처럼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가게마다 매출도 껑충 뛰었다.
송정역시장의 성공은 실제 각종 수치로도 확인됐다. 사업 직후 조사 결과 점포당 하루 평균 매출액은 10만원에서 55만원으로 다섯배 넘게 늘었다. 방문객은 하루 평균 200명에서 2천명으로 열배가 뛰었다. 주말이면 하루 최대 4천여명이 찾았다. 당시 55개 가운데 19개가 빈 점포였을 정도로 쪼그라들었으나 지금은 점포 수가 80개를 넘어설 만큼 몸집이 커졌다.
시아버지가 50여년간 가꾸었던 가게를 넘겨받아 20년 넘게 운영하면서 ‘100년 가게’에 이름을 올린 서울방앗간의 박미순(54) 대표는 “송정역시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우리 가게도 방송 등에 여러 번 소개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전화 주문까지 쏟아져 들어왔다”며 “하루 20만∼30만원이던 매출이 주말이면 3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정역시장의 영광은 그리 길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엄습하고 기업과 행정의 지원마저 줄면서 매출 감소세가 확연해졌다.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진 터였다. 공식적인 자료는 없으나 상인들은 매출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방문객 수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박미순 대표는 “코로나19를 겪고 난 뒤 지금은 하루 평균 매출이 70만∼80만원 남짓으로 많이 줄었다”며 “손님이 이어져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상인 박영순(65)씨도 “몇 년 전에는 정말 대단했다. 시장이 터져나갈 듯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올까 싶을 정도로 붐볐다”고 회고한 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로나19가 찾아오기 직전부터 어느 순간 거리가 텅텅 비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며 허탈해했다.
방문객들의 반응도 썩 호의적이지는 않다.
대전에서 왔다는 정민희(29)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맛집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들렀다. 다른 전통시장과 달리 깨끗하고 걷기 좋다”면서도 “막상 와보니 그렇게까지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고, 맛집도 마땅치 않아 다른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시는 ‘송정역세권 상권 르네상스사업’으로 이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2026년까지 80억원을 들여 1913 송정역시장과 인근의 광산로 일원 상권 활성화를 꾀하는 프로젝트다. 미디어아트 거리 조성, 특화 음식 거리 활성화, 맛집 유치, 스마트 상점가 구축, 각종 맛 축제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송정역시장이 보여줬던 눈부신 성공 신화가 재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송정역시장의 부침을 통해 전통시장의 궁극적인 활성화 방안을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인 중심이 아닌 행정 주도의 사업이 한계를 보인 것은 아닌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른 근본적 콘텐츠의 변화 대신 땜질식 처방에 의존한 것은 아닌지 등을 두루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소상공인상생연구실 조혜정 연구위원은 “지역의 전통시장은 인구 감소로 내방객이 갈수록 줄고 있고, 여기에 각종 시설현대화사업 등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와 상품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이용이 불편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젊은이들도 찾을 수 있도록 맛집 등을 토대로 한 특화 상품을 갖추고 서비스와 위생 등을 지속해서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런 토대를 갖추지 못하면 지원이 끊기는 순간 예전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상황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면서 “활성화를 이어가려면 소비자들이 지속해서 찾아올 수 있는 즐길 거리와 볼거리,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관계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한다.
송정역시장 활성화사업 전반을 지켜봐 온 한 전문가는 “KTX 송정역 개통과 맞물려 사업이 시작됐다는 타이밍, 역세권이라는 입지, 대대적인 지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다양한 시도 등이 맞물려 성공을 거뒀던 사례”라고 평가한 뒤 “하지만 이후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코로나19로 유동 인구가 줄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행정과 민간기업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주체가 돼야 할 상인의 참여도가 떨어졌고, 이 때문에 지속 가능한 아이템 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라면서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재도약을 위한 방안들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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