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엘니뇨가 예상되지만 농산물 투자상품들은 주춤한다. 투자상품 내에서 비중이 적거나 거의 없는 커피, 원당 등의 가격만 뛰고 대표 벤치마크인 곡물 가격이 하락한 영향이다. 커피, 원당에 대한 베팅 수요가 점차 늘고 있지만 관련 상품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ODEX 3대농산물선물(H) (12,355원 ▲520 +4.39%) ETF(상장지수펀드)는 올들어 4.04% 하락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던 지난해 최고 48%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된다.
투자자들은 슈퍼 엘니뇨로 인한 공급 차질로 농산물 투자상품이 좋은 수익률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 엘니뇨로 농산물 작황에 문제가 생기면 가격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관련 상품들의 가격도 올라갈 것으로 봐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농산물 ETF, ETN(상장지수증권) 등의 투자상품이 대부분 밀, 콩, 옥수수 선물가격 지수를 따라가는데 이들 가격이 주춤해 수익률도 좋지 않았다.
KODEX 3대농산물선물(H) ETF는 옥수수(39.33%), 밀(23.83%), 콩(16.86%), KODEX 콩선물(H) (14,595원 ▲590 +4.21%) ETN(13.05%) 등을 높은 비중으로 담고 있다. 올해 5.88% 하락한 메리츠 레버리지 대표 농산물 선물 ETN(H) (24,190원 ▲1,890 +8.48%)의 경우 블룸버그 대표 농산물 지수를 기초지수로 추종하는데 밀, 콩, 옥수수 선물 가격으로 구성돼 있다.
엘니뇨가 영향을 준 건 곡물이 아니라 원당, 커피 등 소프트 농산물이다. 엘니뇨는 원당과 커피의 주 산지인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에 가뭄을 일으켜 공급 차질을 불러 일으켰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2대 원당 생산국인 인도는 파종기간에 모든 공급처가 엘니뇨 영향에 노출된다”며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등 ‘커피 벨트’로 불리는 주요 산지들도 엘니뇨발 공급 차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현재 ‘슈가플레이션'(슈가+인플레이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소프트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설탕 선물가격은 12년 만에 톤(t)당 700달러를 넘어섰고 현재는 t당 680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로부스타 원두 선물가격도 t당 2800달러 선을 기록 중이다.
슈가플레이션 베팅하고 싶은데…개미들, 쳐다만 봐야하는 이유는?
국내에선 소프트 농산물로 구성된 투자상품이 많지 않다.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 (7,715원 ▲300 +4.05%) ETF의 경우 설탕 선물가격을 전체의 14.35%의 비중으로 담고 있으나 나머지는 대부분 밀, 콩, 옥수수 등이다.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미국 시장엔 설탕 가격에 연동되는 ‘투크리움 슈가 펀드(티커명 CANE)’, 곡물과 소프트 농산물을 모두 담고 있는 ‘인베스코 DB 어그리컬쳐 펀드(DBA)’ 등이 상장돼 있지만 PTP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들어 시행된 미국 정부의 PTP 규제는 투자자가 원자재 투자상품을 매도하면 10%의 세금을 원천징수해 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도형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 본부장은 “그간 금·은, 원유, 곡물 외 커피, 원당 등의 원자재에 대한 투자수요가 많지 않아 관련 상품들이 적었다”며 “최근 들어 소프트 농산물에 대한 투자상품 문의가 있지만 관련 증권상품이 나오기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원자재 투자상품들이 상장폐지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계 투자은행(IB)인 바클레이즈는 원자재 관련 ETN 21개 상품을 상장폐지시켰다. 코코아, 커피, 설탕 등 단일 상품가격을 추종하는 ETN 등이 포함됐다. 국내에서도 천연가스 가격을 2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ETN 상품들이 지표가치 1000원 밑으로 하락하며 상장폐지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원자재 투자상품에 대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에 나서라고 조언한다. 김 본부장은 “기초자산 지수와의 괴리율이 커지거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어 원자재 상품 투자 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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