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업계가 자사 전기차를 모두 ‘테슬라식’ 전기차 충전 규격으로 통일하면서 충전기 패권 경쟁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현대자동차·기아를 비롯한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충전소 경쟁에서 밀어내면서 전기차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비(非)미국 브랜드 전기차 차주는 미국에서 테슬라가 개발한 충전기 어댑터를 사용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최근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가 기존에 사용하던 합동충전시스템(CCS) 대신 테슬라식 충전 방식인 북미충전표준(NACS)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CCS는 현대차·기아, 폭스바겐 등 테슬라를 제외한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사용 중인 충전 규격이다. 실제로 포드와 GM은 완전 전환을 계획한 오는 2025년까지 테슬라 어댑터를 사용할 방침이다.
테슬라·포드·GM의 미국 시장 전기차 점유율은 70%를 웃돈다. 양사의 전환으로 NACS가 CCS를 대신해 북미 표준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테슬라의 급속 충전소인 슈퍼차저는 미국과 캐나다의 전체 급속 충전기 수량의 60%에 달한다. 내년에 7500개를 추가할 계획인데, 미국 소비자가 향후 충전 때문에라도 테슬라·GM·포드 등 미국산 차를 선호할 가능성도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충전 편의성 때문에 테슬라 쪽으로 옮겨갈 여지가 있다”며 “고려했던 상품군 중 결과적으로 테슬라·GM·포드 등을 이용하면 현대차·기아 등 다른 완성차그룹의 판매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NACS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아이오닉5와 EV6, 포드 F-150 라이트닝, 닛산 리프 등에 탑재된 V2L 기능을 NACS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NACS와 CCS를 동시에 탑재할 수는 있겠지만 비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데다가 각종 손상에 취약하다. 업계 관계자는 “그렇게 되면 핵심 상품 요소를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 방침이)쉽게 바뀔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CCS 충전기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그러나 CCS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및 충전기 시장을 주도하겠다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IT전문매체 더 버지는 “도시바의 HD DVD가 소니의 블루레이 밀려난 것처럼 CCS도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전문가를 인용, “GM과 포드가 미 에너지부에 (CCS 공식)규정을 바꾸라고 로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CCS의 죽음은 거의 확실하다”며 “미국 완성차 제조사 상위 3개업체가 NACS를 지원하면서 CCS를 요구하는 규정이 NACS로 바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충전업체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적어도 북미 시장에서 충전 규격을 전환해야 하는 압박이 거세졌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브이고(EVGO), 블링크, ABB E모빌리티 북미법인 등 미국 내 충전업체들은 NACS 도입을 위해 테슬라와 협업 중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미국에서 다른 완성차 차주들은 한 때 200달러에 달했던 충전 어댑터를 써야 하는 등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테슬라가 충전의 주도권까지 또 잡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3대 요소인 자동차, 배터리, 충전소를 다 갖추는 것”이라며 “테슬라가 미국 전기차 시장을 더욱 장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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