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사진=블룸버그 |
세계 1위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NVIDIA)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에 이르며 젠슨 황(60) 엔비디아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 젠슨 황이 국립 대만대 졸업 축사를 하고 대만 최대 IT전시회에서 키노트 발표를 하면서 대만에 젠슨 황 바람이 불었다.
글로벌 시총 6위로 부상한 엔비디아
엔비디아 주가가 급등한 건 지난해 11월 챗GPT 등장 이후 AI 열풍이 불면서 GPU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엔비디아가 1분기 매출액이 월가 전망치(65억2000만달러)를 웃도는 71억9000만달러라고 밝히자 주가가 급등했는데, 2분기 매출은 11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회사는 전망했다.
지난달 30일 기준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9920억달러로 글로벌 시가총액 6위다. 장중에는 1조달러를 돌파했다. 엔비디아보다 시총이 큰 종목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사우디아람코, 알파벳, 아마존밖에 없다.
엔비디아가 급등하자 엔비디아의 GPU를 위탁 생산하는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도 10% 넘게 상승하며 글로벌 시총 10위로 부상했다. 지난 5월말 대만에서 개최된 아시아 최대 IT 전시회 ‘컴퓨텍스 2023’에서는 젠슨 황의 키노트 발표에 청충들이 운집하는 등 엔비디아 열풍에 대만이 들썩거렸다.
글로벌 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 1위인 미디어텍이 엔비디아와 손잡고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에 사용될 반도체를 출시한다고 발표하면서 엔비디아가 대만 반도체 업체를 끌어주는 분위기도 연출됐다. 대만대 연설에서 젠슨 황이 AI가 컴퓨터 산업의 재탄생을 뜻할 뿐 아니라 대만 기업을 위한 황금 같은 기회라고 강조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엔비디아 주가 급등으로 지분 약 3.6%를 보유 중인 젠슨 황의 재산은 360억달러(약 47조5000억원)로 늘었다. 그런데 젠슨 황이 중국 꽈배기인 마화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야시장을 구경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면서 대만에서 큰 화제가 됐다.
더 주목을 끈 건 젠슨 황이 지난 27일 국립대만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이다. 어떤 네티즌은 젠슨 황이 이날 말한 “걷지 말고 뛰어라(Run, Don’t walk)”를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말한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에 견주기도 했다.
/사진=대만 인터넷 |
젠슨 황이 말하는 AI 시대의 도래
젠슨 황은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태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 간 대만계 미국인이다. 그는 1984년 오리건 주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으며 1992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기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LSI 로직과 AMD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30살인 1993년 엔비디아를 공동 설립한 후 지금까지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대만 최고 명문대인 국립 대만대 졸업식 연설을 살펴보자. 먼저 젠슨 황이 표준 중국어와 대만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젠슨 황은 대만어로 “원래 오늘 대만어로 연설을 하려고 했지만, 생각할수록 긴장이 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고 영어로 대부분의 연설을 진행했다.
이날 약 23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AI시대가 도래했다는 내용과 엔비디아에 관한 3개의 이야기다.
젠슨 황은 “인공지능(AI)이 데이터 엔지니어링,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 공장 운영 및 AI 안전 엔지니어 등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며 AI가 모든 직업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AI가 사용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내놓을 수 있도록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것을 뜻하는데, 순식간에 주목받는 직업으로 부상했다.
그는 모든 기업과 개인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AI를 활용해 놀라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AI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 걱정하지만, (AI가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활용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AI를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뒤처지게 된다는 의미다.
젠슨 황은 AI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예술가, 마케터 등 모든 직군의 퍼포먼스를 ‘고속충전(supercharge)’ 해줄 것이라고 부연했다.
특히 젠슨 황은 우리가 PC,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처럼 중요한 기술인 AI 시대의 시작단계에 있지만, AI는 모든 컴퓨팅 단계를 혁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방법부터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방법까지 AI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먹이를 위해서 달리든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달리든, 달려라
젠슨 황의 대만대 졸업 연설 장면/사진=타이스신원 유튜브 캡쳐 |
이날 졸업연설에서 젠슨 황은 오늘의 엔비디아를 만든 3가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세가와의 계약 건이다.
엔비디아의 첫 번째 제품은 PC 게임을 위한 3D 그래픽 카드다. 엔비디아는 포워드 텍스쳐 맵핑 앤 커브(Forward Texture Mapping and Curves)라는 비전통적인 방식의 3D 그래픽 카드를 개발한 후 일본 게임업체 세가(SEGA)의 비디오 게임기를 위한 계약을 따내면서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문제는 1년 뒤에 터졌다. 엔비디아가 자사의 아키텍처가 기술적으로 열악하며 잘못된 전략임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엔비디아는 개발을 멈춰야 했지만, 세가로부터 약속된 돈을 모두 받지 못하면 회사가 파산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다.
젠슨 황은 세가의 CEO를 만나 엔비디아의 개발이 잘못됐기 때문에 세가와의 계약을 완료할 수 없다고 말한 후 당초에 약속한 잔금은 지급해 달라는, 난처한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세가가 동의하면서 엔비디아는 가까스로 6개월 더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얻어냈다. 그 돈으로 엔비디아가 개발한 게 바로 RIVA 128 그래픽 카드다. 이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엔비디아는 비로소 회사 기반을 다졌다.
젠슨 황은 세가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대만대 졸업생들이 실패에 직면하고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함을 가지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연설 마지막에 젠슨 황은 졸업생들에게 엔비디아가 한 것처럼 “걷지 말고 뛰어라(Run, don’t walk)”고 말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먹이를 위해서 달리든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달리든 달려라” 반도체 기업 중 세계 최초로 1조달러를 달성한 엔비디아를 만든 젠슨 황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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