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2회 스승의 날 기념 현장교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맞춰 보건복지부도 이날 오후 간호법안 관련 국무회의 의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날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보건복지부 입장 발표’ 브리핑을 열고 “어제(지난 14일)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간호법에 대해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른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했다”며 “이에 따라 저는 오늘(지난 15일) 국무위원으로서 대통령께 내일(16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임을 보고드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열릴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정이 모두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해 양곡법처럼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공산이 커진 것이다.
당정은 간호법을 ‘의료계 혼란을 가져올 법’, ‘학력에 제한을 둬 직역을 차별하는 법’이라고 판단했다. 조 장관은 “정부는 국민의 건강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며 “그러나 간호법안은 전문 의료인 간 신뢰와 협업을 저해해 국민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간호법안은 의료현장에서 직역 간 신뢰와 협업을 깨뜨려 갈등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며 “이 경우 제일 중요한 국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국민의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의료에서 간호만을 분리할 경우 국민의 권리가 제한될 우려가 있다”며 “의료에서 간호만을 분리해 의료기관 외에 간호업무가 확대되면 국민들이 의료기관에서 간호 서비스를 충분히 받기 어렵게 되고, 의료기관 외에서의 사고에 대해서는 보상 청구와 책임 규명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보건복지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돌봄체계 관련 조 장관은 “제대로 된 돌봄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장기요양기관 등의 기능과 협업을 위한 직역 간의 역할이 국민들의 수요에 맞게 재정립돼야 한다”며 “간호법안은 돌봄을 간호사만의 영역으로 만들 우려가 있어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이 어렵게 된다”고 봤다.
그는 “의료법에는 없는 지역사회 문구가 간호법안에만 처음으로 포함됐다”며 “이렇게 되면 지역사회에서의 의료·돌봄업무가 간호사만의 영역으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보건의료 단체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고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간호사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는 노력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민, 현장,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 우리나라에 맞는 돌봄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간호법안은 협업이 필요한 의료현장에서 특정 직역을 차별하는 법안”이라고 규탄했다. 간호조무사 학력 상한 내용은 복지부가 만든 현재 의료법의 내용과 같다는 지적에는 “2015년에 정부는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철폐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간호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당시 국회에서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없애는 내용은 제외하고 간호 관련 의료법이 통과된 바 있다”며 “잘못된 조항을 이제까지 그냥 놔두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응시자격을 학원과 특성화고 졸업자로만 규정하고 있고, 특성화고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나오면 자격시험을 바로 볼 수 있지만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일정 기간 학원에서 수강을 해야 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된다”며 “이러한 입법 예는 다른 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국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이 대선 전 약속한 사안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느냐는 질의에는 “국민의힘은 대선 과정에서 간호법 제정을 통해 초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지역사회 통합간호와 통합돌봄체계를 구축하고 간호사의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간호법안으로는 통합간호, 통합돌봄체계 구축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재의요구를 국무회의에서 건의하겠다는 계획을 보고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이 큰 법안일수록 충분한 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 간호사 및 간호대학생들이 국제 간호사의 날인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제 간호사의 날 기념집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의 대통령 공포(公布)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
이에 간호계 반발이 거세다.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 간호계가 사상초유의 ‘단체행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협회에 등록한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5191명(14일 자정 기준) 중 10만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협회는 이에 따라 대통령이 간호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해 단체행동 수위를 논의하고 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대한민국 모든 간호사가 압도적으로 적극적인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국민 건강권과 대한민국 보건의료 미래의 명운이 달린 간호법 공포를 두고 간호사들이 적극 행동에 나서기를 결심한 만큼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그에 따른 적극적인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장관의 발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간호법 반대단체가 주장했던 가짜뉴스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면서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보건 의료정책을 이끌어갈 정부가 이처럼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흑색선전에 근거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수 있는지 경악과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명 ‘의사면허 취소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전망이다. 조 장관이 간호법 외 다른 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 행사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힌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정오에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오는 17일 총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 상태다.
복지부는 단체행동에 따른 의료 공백이 발생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계획이다. 조 장관은 “단체 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있을 수 없다”며 “관련법과 관련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긴급상황반을 통해서 점검을 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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