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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일자리 몰리고 EU 정상 집결…인구 7만 이 도시 ‘핫플’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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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에스비에르 항구 /사진=권다희 기자
덴마크 에스비에르 항구 /사진=권다희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서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항구도시 에스비에르. 코펜하겐에서 차로 3시간 여를 꼬박 달려야 닿는 이 도시에 지난달 마지막 일주일간 한국·일본·미국·캐나다·베트남·브라질 등 20여 개 국가 사절단이 몰려들었다. 같은 주 코펜하겐에서 열린 풍력산업계 행사 윈드유럽에 참석한 각국 관계자들이 에스비에르 방문을 ‘필수 코스’로 넣으면서다. 이들이 이 북해 항구도시에 모여든 건 해상풍력 산업에서 에스비에르가 갖고 있는 독보적 경쟁력을 살피기 위해서다.

북해 에너지 산업 상징 된 인구 7만 도시

에스비에르는 해상풍력 산업을 위한 배후항만으로 유명하다. 해상풍력 단지를 건설하려면 풍력발전기를 구성하는 초대형 구조물을 보관·유지·보수할 수 있는 특수 항만이 필요하다. 길이가 100미터에 가까운 블레이드, 수십미터의 타워 섹션, 수백톤 무게의 넛셀 등을 둘 수 있는 넓은 야드가 필수다. 이 장비를 나르고 정비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특수선박과 크레인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비에르는 이 역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담당하는 항구다. 약 450만제곱미터(약 136만평) 규모의 이 항만을 통해 유럽 해상풍력단지 구조물·자재의 반 이상이 운송된다.

지금까지 ‘세계 최대 풍력산업 배후항만’으로 명성을 떨쳐 온 이 도시는 다음 단계로 진화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변곡점을 맞은 유럽 에너지 시장 변화를 고스란히 투영한 모습으로다. 1일(현지시간) 찾은 이 도시는 그린수소, 그린암모니아 생산 등 ‘파워 투 엑스(PtX)*’, 그리드 서비스 등 신(新) 에너지 산업 중심지로의 이행에 한창이었다.

에스비에르의 예스퍼 프로스트 라스무센 시장은 이날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했던 일은 해상풍력 설치의 일부 였지만 이제는 ‘그린’ 연료 생산과 플라스틱 재활용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 정상,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해상풍력 확대를 의제로 한 제1회 북해 정상회의를 에스비에르에서 연 배경에도 이런 잠재력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인구 7만2000명, 광역 지역을 합쳐도 인구 약 11만6000명인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유럽 에너지 산업의 상징이 됐을까.

5월 1일 시장실에서 예스퍼 프로스트 라스무센 시장/사진=권다희 기자
5월 1일 시장실에서 예스퍼 프로스트 라스무센 시장/사진=권다희 기자

풍력 나선 토탈·BP·셸…바뀐 시장 맞춰 항구도 변하다

라스무센 시장은 에스비에르 성장의 원동력 중 하나를 산업의 변화에 맞춰 재빨리 대응했다는 데서 꼽았다. 에스비에르는 1868년 250m 길이의 부두로 건설됐다. 20세기 덴마크 어업의 중심지였고 유제품·육류 등을 유럽에 수출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러다 1970년대 덴마크 북해 유전이 발견되면서 석유·가스 산업 관련 화물·서비스를 담당하는 항구로 역할을 확대했다. 2000년대 북해 해상풍력 단지 건설이 시작되자 풍력 배후항만으로서의 역할이 추가됐다.

시장 변화에 맞춰 항만의 서비스 대상을 기민하게 다각화 한 전략은 유럽 에너지 산업이 급격히 바뀌던 2010년대 이 도시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2010년부터 시의회에서 활동했고 2018년부터 시장을 맡고 있는 라스무센 시장은 이 기간의 변화를 누구보다 생생히 목격했다. 그는 “항구에 있는 250개 에너지 기업이 20년 전에는 모두 석유·가스 사업을 하다 이제 그린 에너지 분야를 사업의 일부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는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2000년대 후반 배럴당 100달러대로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2010년대 중반 들어 30달러대로 급락해 수년간 저유가를 이어갔다. 석유 기업들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사업 다각화를 택했다. 이 무렵 재생에너지가 각국 정부의 보조금 등에 힘입어 확대되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며 수익성이 높아지자 석유 기업들이 풍력·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에스비에르 항구의 주고객 프랑스 토탈은 물론 BP·셸 등 한 때의 오일메이저들이 현재는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의 주요 기업이 됐다. 화석연료 중심 사업을 하던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동에너지는 오스테드로 이름을 바꾸고 ‘그린’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했고, 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이었던 스타토일도 사명을 에퀴노르로 바꾸고 풍력사업을 확대 중이다. 모두 2010년대 나타난 에너지 산업의 변화다. 라스무센 시장은 “기존 에너지 기업들이 위험 분산을 위해 ‘블랙’과 ‘그린’ 에너지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스비에르도 시장 변화에 맞춰 항구의 서비스 대상을 다각화됐다. 2000년대 초 항구의 일부를 북해 해상풍력 단지 건설용 배후항만으로 쓰다가 해상풍력 사업이 늘어나자 배후항만 면적을 점차 확대했다. 10여 차례에 걸친 점진적 변화였다. 이날 찾은 항구에서는 풍력산업 용 부지를 추가로 확장하는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일자리 전환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라스무센 시장은 “석유가스 산업과 해상풍력을 위한 항만 일자리는 유사한 기술을 요구한다”며 “일부 다른 기술 습득이 필요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업무여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변화해 온 지역 일자리 구성은 에너지 산업 변화를 반영한다. 2010년대 초 1만명 대이던 석유가스 기업 일자리는 지난해 2400명으로 줄어든 반면 2010년대 초반 2000명을 갓 넘었던 풍력에너지 기업 일자리는 지난해 3500명으로 늘었다. 거대 에너지 기업들의 다각화로 석유가스와 풍력을 동시에 영위하는 기업의 일자리도 3400명을 기록했다.

풍력산업으로의 다각화는 2010년대 중반 석유산업 냉각기의 여파를 상쇄했을뿐아니라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며 일자리도 다양화했다. 예스퍼 뱅크 에스비에르 항만청 CCO(최고사업책임자)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해상풍력 공급망에서 가장 큰 일자리 중 하나가 특수 선박에 대한 서비스”라며 “특히 잭업 선박(선체에 이동식 다리가 부착된 물에 떠 있는 바지선)은 서비스에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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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품고 ‘그린’ 인프라에 투자하다

풍력산업 기업들이 운송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항구 근처에 생산시설을 지으며 에스비에르 인근의 공급망 구축도 뒤따라 왔다. 터빈 제조업체 지멘스가메사 같은 대기업들 뿐아니라 공급망의 더 밑단에 있는 다양한 부품 회사들이 이 곳에 공장을 지었다. 라스무센 시장은 “우리는 산업과 관련한 전체 공급망을 가지고 있고 업계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했다.

풍력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터빈·블레이드 등 핵심 자재가 크고 무거워지는 추세는 에스비에르 인근 생산시설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라스무센 시장은 “현재 해상풍력 단지의 많은 부품이 항만 부지가 아니라 풍력단지에서 50km쯤 떨어진 곳에서 제조 돼 트럭으로 운송된다”며 “하지만 차세대 터빈은 너무 커서 도로로 운송할 수 없고 항만을 통해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수 년 내 에스비에르에서 더 많은 생산이 있을 것”이라 했다. 부품이 크고 무거워지면서 항구와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야 기업들이 운송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기·난방원을 신속하게 탈탄소화한 조치는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높였다. 에스비에르시는 지난달 시 전체의 난방을 ‘그린’화했다. 바닷물을 가열한 히트 펌프, 전기 보일러, 우드 칩(사용이 어려운 나무를 칩 형태로 잘라 발전 원료로 사용)과 바이오매스, 데이터 센터에서 남은 열 등을 이용해 도시 전체 난방·온수를 공급한다.

여기에 이 지역에서 쓰는 전기도 인근 풍력발전소가 만든다. 이 곳에 공장을 지으면 가동에 필요한 전기와 열(스코프2)을 거의 무탄소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 곳에 투자를 결정할 때 매우 큰 ‘가점’ 요인이다. 도시 내 순환경제도 고도화했다. 도시의 유기 폐기물로 바이오 연료를 생산해 시의 쓰레기 수거 트럭을 이 바이오 연료로 운행한다.

블레이드를 옮기는 크레인이 에스비에르 항만에서 작업 중이다/사진=권다희 기자
블레이드를 옮기는 크레인이 에스비에르 항만에서 작업 중이다/사진=권다희 기자

교통·그린 인프라 + 에너지 산업 전환→ ‘PtX 허브’로 진화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에스비에르는 풍력발전을 위한 서비스 항만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중이다. 세계 최대 PtX 생산 기지로 낙점된 게 변화의 큰 축이다. 스위스 수소 전문 기업 H2에너지와 세계 최대 에너지 트레이딩 기업 중 한 곳인 트라피구라의 합작사 H2 에너지 유럽은 10억 유로를 들여 1GW 규모·연간 9만톤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에스비에르에 짓기로 지난해 결정했다. 2025년 시운전을 목표로 하는 이 시설은 예정대로 완공될 경우 세계 최대 그린수소 생산설비가 된다.1GW는 1만대 이상의 트럭의 연간 연료 소비량에 해당한다.

덴마크 투자회사 CIP도 약 14억 유로를 투입해 에스비에르 인근에 그린 암모니아 생산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예정대로 2028년께 완공된다면 유럽 최초 기가와트급 PtX 시설 중 하나가 된다. 그린 암모니아는 비료나 선박 연료 탈탄소에 핵심으로 꼽히는 연료다.

북유럽 최대 플라스틱 재활용 기업인 ‘리소스 덴마크’는 올해 말 가동을 목표로 에스비에르에 첫 상용화 규모 시설을 건설 중이다. 기존 플라스틱을 새로운 플라스틱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로 만드는 공장으로, 연간 16만 톤의 덴마크의 플라스틱이 여기서 재활용된다. 라스무센 시장은 “이 시설에서 덴마크의 거의 모든 플라스틱 폐기물이 처리될 것”이라 전했다.

투자자들이 대형 PtX 및 재활용 생산시설을 에스비에르에 지으려는 요인으로 라스무센 시장은 “교통과 ‘그린’ 환경”을 꼽았다. H2 에너지 유럽은 이 곳에서 만드는 그린수소를 독일로 보내 그 곳의 수소트럭 연료 등으로 쓸 예정이고, 그린암모니아는 로테르담, 함부르크 등의 유럽 주요 항구로 운반될 수 있다. 탈탄소 전기·난방 인프라를 갖춘 항구도시라는 경쟁력이 유럽 전체 에너지 산업 전환과 맞물리며 극대화되는 모습이다.

PtX 처럼 새로운 에너지 산업이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에너지 산업이 전면적으로 바뀌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뱅크 COO는 지난해 약 1200개였던 ‘에너지 시스템’으로 분류된 일자리를 가리키며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자리”라고 했다. 그는 “매우 높은 수준의 에너지 최적화 시스템 작업을 사용해 그리드 통합, 전력 저장 등을 담당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터빈을 만드는 것도 산업의 일부이지만 에너지를 변환·분배하는 산업 더 커질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는 일부일 뿐이고 에너지 서비스 및 파생되는 일자리가 더 큰 규모로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파워 투 엑스(Power-to-X:PtX):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에너지로 물에서 수소를 분해한 뒤 이 수소(그린 수소)를 연료·화학물질 생산에 직접 사용하거나, 질소(N) 또는 탄소(C) 등 다른 원소와 결합시켜 사용하는 것. 수소에 탄소(C)를 첨가하면 e-디젤, e-메탄올, e-메탄과 같은 e-연료를 생산해 수송 등에 쓸 수 있고, 수소에 질소(N)를 첨가하면 농업용 비료 등으로 쓰이는 e-암모니아를 만들 수 있다.

특수 차량이 항만에서 타워 섹션을 운반 중인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특수 차량이 항만에서 타워 섹션을 운반 중인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약 90미터 길이의 터빈 풍력기 블레이드가 항만 야드에 놓여 있는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약 90미터 길이의 터빈 풍력기 블레이드가 항만 야드에 놓여 있는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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