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유명 투자자이자 버크셔 회장·부회장인 버핏과 멍거, 5시간 동안 주주와 질의응답
6일(현지시간) 미국의 시골 도시 오마하가 들썩거렸다. 전국에서 수만 명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이 버크셔 주주총회 연례회의에 참석해 ‘투자 귀재’ 워런 버핏(92) 회장을 만나기 위해 오마하로 모여들면서다.
주주들은 최근 이슈가 된 인공지능(AI), 은행위기에서부터 단골 질문인 기술주 투자와 후계자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5시간이 넘는 질의응답 시간에 버핏과 그의 투자 파트너 찰리 멍거 부회장(99)은 차분히 답하며 수십년 동안 투자 세계에서 얻은 식견을 공유했다.
“애플은 달라…지분 0.1%씩 늘 때마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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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와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버핏은 버크셔 최대 투자처인 애플에 대해 “우리가 소유한 어떤 사업체보다 더 나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찬사를 이어갔다.
버핏은 “소비자에게 아이폰의 위상은 특별하다”면서 “소비자들이 만약 세컨드카와 아이폰을 고민한다면 아이폰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만큼 아이폰은 대단한 제품”이라며 “우리가 애플 지분 5.6%를 갖게 된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며 0.1%씩 지분을 늘릴 때마다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석유회사 옥시덴털에 대한 지분 확대로 인수 가능성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선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버핏은 밝혔다. 그는 옥시덴털 주식 보유에 만족하며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버크셔는 옥시덴털 지분의 23.5%를 확보하고 있다.
“AI보다 인간 지능이 우월…과대광고 회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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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챗GPT 열풍으로 주목받는 AI와 관련해 두 투자 거물은 회의적 시각을 내비쳤다. 부회장 멍거는 AI가 많은 산업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것이라면서도 AI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판단했다. 그는 “우리는 앞으로 세계에서 훨씬 더 많은 로봇 기술을 보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AI가 좀 과대평가 되고 있다고 본다. 나는 구식 지능이 꽤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버핏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가 세계에서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면서 “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은행위기 경영진 책임…美 디폴트 상상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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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최근 금융시장을 뒤흔든 은행위기에 대해 경영진이 자산 부실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백히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경영진이 고객을 신경쓰기보다 부자가 되는 데에만 연연하며 문제가 결국 터질 때까지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또 첫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 규제 당국과 정치인, 언론이 제대로 된 메시지를 내지 않아 예금주들의 공포를 부채질해 위기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 부채 한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교착 상태와 관련해 버핏은 정치인이나 당국자들이 디폴트를 초래해 미국 금융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정부는 앞서 디폴트가 발생하면 미국에서 8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증시가 45% 폭락하는 등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며 의회에 부채 한도 상향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정부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조건으로 연방 예산 삭감안을 제안하며 대치하고 있다.
“달러는 유일한 기축통화…다른 옵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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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해선 다른 옵션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달러는 기축통화다. 다른 통화가 기축통화가 될 여지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무역에서 달러 이외의 통화의 결제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달러가 기축통화 자리를 잃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후계자는 그렉 아벨…결정에 100%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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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자신의 후계자로 2021년 그렉 아벨 부회장을 확정한 데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결정에 “100% 만족한다”면서 “그렉은 나만큼 자본 배분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무척 행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렉은 내가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과 같은 틀에서 의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 틀을 30년 동안 만들어왔다”고 강조했다.
“미·중 긴장 낮춰야…투자처로 대만보다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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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대해 상호 긴장을 낮추고 무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전기차회사 비야디(BYD) 투자를 주도하는 등 중국 낙관론자로 꼽히는 멍거는 미·중 긴장 완화가 “상호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버핏은 미·중 긴장을 언급하면서 대만보다는 일본에 자본을 투자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버크셔는 대만의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TSMC를 매수했다가 단기간에 매도했고, 일본 5대 종합상사에 대해선 지분을 점점 늘리고 있다.
173조 현금 방석…1분기 5.8조원 자사주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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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연례총회 시작과 함께 발표된 버크셔의 1분기 순익은 355억달러(약 47조1000억원)였다. 1분기 말 기준으로 보유 현금은 1306억달러로 3개월 전에 비해 20억달러가량 증가했다.
또 버크셔는 1분기에 133억달러어치 주식을 매도했으며, 이 가운데 29억달러는 다른 상장 주식을 매입하고 44억달러는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버핏과 멍거가 투자할 만한 저평가 자산을 찾다가 결국 자사에 베팅한 셈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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