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수출 부진으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제기관과 석학들은 한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이나 일부 개발도상국에 비해 여전히 탄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저출산, 이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 여전히 높은 물가상승률 등 불안 요인도 다수 언급됐다. 전세계적인 구조 변화 시기에 한국도 대응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지난 6일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는 여러 세미나와 기자간담회,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경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2004년(제주) 이후 19년 만에 한국(인천)에서 열린 이번 연차총회에는 ADB·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들과 노벨상 수상자인 마이클 크레이머 시카고대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 주최국인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다수 언급했다.
“한국 경제 매우 탄탄…외환위기 없을 것”
이들은 대체로 한국 경제 상황을 두고는 여전히 “탄탄하다”고 설명했다. 아사카와 마사츠구 ADB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는 매우 낙관한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되면서 탄탄한 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한국이 외환 부족이나 유동성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성장률 둔화 우려가 크지만 당장 경제 근간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IMF의 경제전망 보고서 관련 기자간담회를 위해 ADB 연차총회를 찾은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도 “한국은 최근 몇분기 동안 교역 상대국의 성장세 둔화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침체로 수출이 부진하다”면서도 “한국 경제 체질은 매우 탄탄하다”고 말했다. IMF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1.5%로 낮춘 것을 두고도 “세계 선진국 평균인 1.3%보다는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크레이머 교수 역시 ‘한국 세미나의 날’에서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의 대담을 통해 “한국은 개발도상국들에 가장 유효한 개발 모델”, “한국의 방역 관련 조치를 다른 국가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 “한국의 높은 학습 수준은 성공을 보여주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고령화, 저출산, 재정건전성…불안 요인도 산적
하지만 연차총회 기간 중 진행된 여러 세미나와 기자회견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다수 거론됐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다. 사와다 야스유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한국 세미나의 날’ 발표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일본보다도 더 낮게 집계된다”며 “고령화는 정말 큰 문제이고, 아시아 국가들은 준비가 안돼 있다. 추후 연금보험 등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 크레이머 교수도 고령화 문제에 대해선 “한국은 저출산 상황이고 여성의 노동 참여율도 낮은데, 이는 한국 경제의 큰 도전과제”라고 지적하며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여서 완전한 이민 (확대)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면 이스라엘과 중동처럼 아동·노인 돌봄 등 부분적으로 이민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막대한 국가채무와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김현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정책연구실장은 “한국은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은 낮기 때문에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이는 경기둔화로 이어지고, 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지출을 늘려 공공부채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소득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은 순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파울로 메다스 IMF 재정국 과장은 한국을 채무불이행 문제까지 겪고 있는 일부 개도국과 구분하면서도 “(코로나19) 위기 때 재정을 풀었다면 위기가 해소된 이후에는 적자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며 “타당하고 안정적인 중기 재정계획을 마련하고 충분한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리니바산 국장도 재정 문제 있어서는 “한국은 재정 건전화를 위해 노력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발목 잡힌 韓 성장…”기업 혁신 지원해야”
한국 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IMF는 한국이 하반기부터 중국과 반도체 시장 회복에 힘입어 점차 성장세를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당장 직면하고 있는 고금리, 고물가, 주택시장 부진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IMF는 한국의 높은 근원물가 상승률을 언급하며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번 연차총회 기간에 같은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당분간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 회복도 기대하기 힘들다.
토마스 헬블링 IMF 아시아태평양 부국장은 한국이 그동안 성장 동력이었던 중국·반도체 부진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에 대해 구조 개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선 기업이 회복력과 복원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것은 혁신과 연구개발, 교육”이라며 “이 세가지 부분이 잘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연한 인재가 나올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 거시 경제 펀더멘털을 갖출 수 있게 노력하는 동시에, 강한 재정 정책 프레임워크와 유연화하고 탄력적인 환율 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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