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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80% 할인” 안 보이네…백화점에서 ‘세일’ 문구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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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입점한 의류 기업 임원 A씨는 최근 고민이 깊다. 오는 9월에는 내년 봄 판매 물량을 발주해야 하는데 백화점 할인 행사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내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판촉 행사 관련 심사지침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고물가, 고금리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히는데 판촉 활동까지 제한받으면 발주 물량을 줄일 수 밖에 없다.

백화점, e커머스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세일’ 표현을 꺼리고 있다. ‘페스타’로 에둘러 표현하고 대대적인 할인 행사 광고도 하지 않는다. 내년부터 본격 적용될 ‘판촉 행사와 관련한 대규모유통업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할인 행사 홍보에 소극적이면 브랜드가 직접 나설 수 밖에 없다. 대형 브랜드는 자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할인 정보를 알릴 수 있지만 중소 브랜드의 경우 마땅한 홍보 수단이 없어 소비자로부터 잊혀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공정위 판촉행사 관련 심사 지침, 내년 본격 적용…유통업체 주도 할인행사 어려워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진행된 굵직한 할인 행사에는 ‘세일’이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매년 4월에 진행하는 봄 정기세일에 롯데백화점은 ‘그린브리즈’, 신세계백화점은 ‘신백페스타’,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혜택 마스터’를 진행했다. 각 백화점들은 ‘프로모션’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홍보시에도 브랜드 할인율보다는 구매 금액대별 백화점 상품권을 증정하는 사은행사를 강조했다. 사은행사는 대부분 백화점이 부담하는 고객 혜택이다.

선물의 달인 5월에도 이런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SSG닷컴은 5일까지 ‘MAY 쇼핑 페스타’를 열었다. 선물하기 좋은 유아, 리빙·가구, 뷰티, 건강식품 등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 상품과 브랜드가 중심이다. 하루 2개 브랜드씩 타임딜도 진행한다. 11번가도 오는 10일까지 ‘슈퍼히어로페스타’를 연다. 타임딜, 브랜드딜, 반값딜, 1+1딜, 리퍼딜 등 5가지 종류의 할인 행사가 중점이다. 양 사 모두 개별 브랜드 할인율보다는 할인쿠폰 증정이나 럭키드로우(추첨 이벤트) 등에 홍보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통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가격 할인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배경에는 공정위의 심사 지침이 있다. 공정위는 2019년 인터넷 쇼핑몰과 백화점을 겨냥해 판촉행사 관련 심사 지침을 제정하고 이듬해 1월부터 시행했다. 대규모 유통업체가 판촉비를 50% 이상 분담하라는 것이 골자다. 가격 할인분도 법상 판촉비에 포함된다.

대형마트의 경우 대부분 직매입이기 때문에 납품 단계에서 판촉비 분담이 이뤄진다. 재고부담도 유통업체가 지기 때문에 재고 소진을 위한 마감세일 등을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반면 오픈마켓 형태의 인터넷쇼핑몰이나 특약매입(반품조건부로 상품을 외상 매입해 판매한 뒤 판매 수수료를 공제한 상품대금을 입점업체에게 지급하는 방식) 중심의 백화점은 세일 강요 등 불공정행위의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심사 지침 시행 직후 코로나19(COVID-19)로 소비가 얼어붙자 업계는 적용을 미뤄줄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2020년 6월 ‘판촉 행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심사지침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했고, 매년 기한이 연장되면서 올해 말까지 이어졌다.

올해까지는 예전처럼 판촉행사가 진행 가능하지만 유통업체들은 논란의 여지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유통업체가 행사 기간을 공지하면 브랜드들이 참여 신청을 내거나, 가격 할인 문구 등은 가급적 피해 홍보하는 식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세일이든 페스타든 특정 단어가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유통업체가 주도해 가격 할인 분위기를 조성한 듯한 표현을 쓰기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통관계자는 “기존에도 백화점은 세일 기간 동안 수수료율을 1% 인하하고 e커머스는 할인 쿠폰 및 카드 할인 비용을 일부 부담했다”며 “거래 중개 유통업체가 직매입처럼 판촉비를 부담하게 되면 적자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브랜드 타격 적지만 중소브랜드는 소비자 노출 기회 적어져

대형 브랜드의 경우 큰 타격은 없는 상황이다. 자체 온라인몰을 강화하고 있어 대형 유통업체의 할인 행사에 기댈 필요가 없는 데다 생산 방식도 변화해 재고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어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체 브랜드인 보브, 스튜디오 톰보이 등의 경우 미리 대량 주문을 하기보단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 2차, 3차 재생산을 하는 제품이 많다. 이 경우 해외 발주를 하게 되면 재입고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통 국내 공장을 이용한다. 국내 공장은 생산단가가 높지만 브랜드 판매 가격도 중고가 수준이다 보니 이익률을 해칠 수준은 아니다.

이랜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는 ‘2일5일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2일만에 국내에서 의류를 생산해 소비자 반응을 테스트 한뒤 베트남 등 글로벌 공장에서 5일만에 대량 생산하는 식이다. 역시 해외 자체 공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반면 해외 공장에서 저렴하게 생산해 중저가에 대량 판매하던 중소 브랜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외 공장에 위탁 생산을 맡겨 백화점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수개월 전부터 생산계획을 짜야 한다. 내년 봄 신상품을 올해 9~10월에 발주해 내년 1월에 받아 진열하는 식이다. 해당 시즌의 날씨, 소비자 호응 등에 따라 정상가 판매 후 재고는 정기 세일을 통해 소진해왔다.

유통업체들도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상품을 공급할 기회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유통업체들이 세일 홍보에 소극적으로 변하면서 재고 소진이 힘겨워지고 있다. 이를 우려해 주문량을 줄이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 중소 브랜드 관계자는 “고가의 브랜드들은 애초에 노세일 전략인 경우가 많아 할인 행사 축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아쉬운대로 직접 세일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이 분위기를 조성해 소비자들을 모집시켜주던 과거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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