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들이 해외에서 경쟁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규제는 과감하게 글로벌 스탠다드로 바꿔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낡은 규제로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희소식이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 완화의 속도나 과정은 대통령의 주문만큼 간단하지 않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제 대응 경험이 없고 자금적인 여유와 시간이 없는 스타트업에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규제는 훨씬 가혹하다.
실례로 디지털 도어록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스타트업이 규제 때문에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졌다. 국가기술표준원이 16년전에 만든 ‘안전확인 안전기준 부속서 22’에 따르면 디지털 도어록의 전원방식은 건전지나 어댑터의 직류전원으로, 2차전지는 사용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나 보조배터리 또는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2차전지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에 들어와 있는데 유독 디지털 도어록에만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미국, 중국 등 2차전지 관련 규제가 없는 국가에서는 안면인식, 홍채인식, 지문인식, 체온측정, 영상통화 등의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지만 한국산 디지털 도어록과 관련된 규제로 다양한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도어락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최근 2년 새 77% 급감했다. 2032년 전세계 스마트 도어락 시장규모가 110억달러(약 14조7620억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할 때 낡은 규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손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물론 화재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는데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되지만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보다는 기술적 보완을 통해 대안을 찾는 노력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한때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여겨지던 스타트업은 요즘 생존과 소멸의 변곡점에 서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1분기 벤처 투자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60.3% 감소했다. 전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와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인해 투자가 급감했다.
벤처·스타트업을 위한 정책자금 투입과 과감한 규제개선을 할 것이라는 정부의 후속 발표가 있었지만 국내 규제로 인해 해외시장 진출이 발목 잡힌 스타트업에게는 좀처럼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기술의 문제를 정치 공론장인 국정감사에서 호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직된 규제정책 시스템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현실화가 필요한 낡은 규제를 신속하게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정감사 이후 디지털 도어록 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중기옴부즈만에서 안전기준을 개정을 요청했고 국가기술표준원은 디지털 도어록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5월에 착수할 예정이라 한다. 국정감사에서 디지털 도어록 이슈가 제기된 지 7개월 만이다. 용역 결과가 빨리 나온다 해도 실제 법 제도 개선까지 또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속도가 생명인 스타트업에 비해 규제 당국의 시계는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