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직접 안 가도 시험 가능…신약개발 효율성 높여
국내 약 배달 불가 등 규제 가로막혀…제도개선 시급
복지부, 이달 가이드라인 마련 위한 민간협의체 구성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지연되면서 ‘분산형 임상시험’도 차질을 빚게 됐다. 분산형 임상시험은 임상시험 관련 활동의 일부나 전체가 연구자가 있는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비대면’으로 실시하는 임상연구다. 환자가 병원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돼 임상시험 참여율이 높아지고 진행 속도도 빠른 장점이 있다. 이에 효율적인 신약 개발을 위해 분산형 임상시험을 확대하는 게 세계적 추세지만 국내에서는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등에 대한 규제로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달 중 코로나19 위기단계가 하향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경우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던 비대면 진료마저 불법이 되고 관련 법 통과를 위한 국회 논의도 진척되지 않고 있어 분산형 임상시험을 위한 여건이 더 악화하게 된다.
2일 임상연구동향 매체 클리니컬 트라이얼스 아레나에 따르면 2019년에서 지난해 5월 사이 단일국가 기준 영국의 분산형 임상시험 비율은 전체의 12.8%로 2010~2016년 3.0%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호주는 4.0%에서 12.3%로 미국도 2.6%에서 8.1%로 각각 늘었다.
반면 한국은 0.6%에서 1.2%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다국가 분산형 임상시험 비율을 봐도 뉴질랜드가 11.3%, 영국이 11.1%, 독일은 9.9%, 미국은 8.6%로 각각 비중이 증가했지만 한국은 4.1%에서 6.4%로 증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분산형 임상시험 분야에선 중진국인 인도(12.8%)와 이집트(12.1%), 브라질(10.2%)에도 뒤처진다.
업계에선 국내에서 사실상 분산형 임상시험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웰트가 불면증 치료 앱인 디지털 치료기기 ‘웰트-I’의 3상 임상시험에서 원격으로 임상 정보를 수집하며 분산형 임상시험을 한 사례가 있지만 약이 아닌 의료기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해외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산형 임상시험이 확대됐다. 미국에선 모더나가 분산형 임상시험으로 12주 만에 3만여 명의 대상자를 모집하는 등으로 1년이 채 안 돼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있지만 국내는 신약 관련 비대면 임상시험이 규제로 막혀있다.
현행법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지 않고 약 배달이 불가능한 점, 전자동의서 등과 관련한 정부 가이드라인의 부재 등이 국내 분산형 임상시험 도입을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백선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사업본부장은 “약 개발 관련 국내에서 비대면 임상시험을 한 적이 거의 없다”며 “간호사가 임상시험 대상의 자택에 방문해 검체를 확인하고 채혈을 하는 행위와 약물 배송 등이 금지돼 있고, 분산형 임상시험을 위한 전자동의서 양식 등도 없어 진행을 잘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달 중 코로나19 위기단계 하향이 예상되는데 이 경우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해져 분산형 임상시험 수행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도 초진 허용과 재진 허용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한 법 개정도 지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올해 스마트 임상시험 신기술 개발 사업에 착수하고 분산형 임상시험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이달 민간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연내 작성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분산형 임상시험 관련 핵심 기술들이 구현되기 위해 의료법과 약사법 등 관련 규제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규제 개선 방안을 검토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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