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페루 사람인 현지 수출업자를 조사하는 페루산 녹두 원산지 조사에서 현지의 한국인 수출업자를 통역사로 고용했는데, 세관 직원들도 이같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해충돌의 소지가 큰 인물을 조사에 참여시켰는데도 관세청은 페루 세관당국의 항의를 받고 나서야 해당 사실을 깨달았다. 조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관세청의 해명과 달리 실제로는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5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관세청은 국내로 수입된 페루산 녹두의 원산지가 의심된다며 지난해 4월 현지조사에 착수했다. 조사팀은 스페인어 통역사로 현지에 거주하던 ‘xxx 박(이하 박씨)’을 고용했는데, 알고 보니 페루에서 한국으로 녹두를 수출하는 업자였다. 이해충돌의 소지가 크지만 관세청은 “검증할 때는 그분이 통역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놨다. 왜 공식 통역사를 섭외하지 않고 수출업자인 박씨를 대동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관세청도 처음에는 박씨가 수출업자였던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박씨는 페루 원산지 조사의 시발점이 된 제보자”라면서 “관세청의 한 직원이 박씨를 섭외했는데 현장조사에 참여한 직원들도 이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제보했다. 그러면서 “나중에야 페루 녹두 수출자인 게 발각됐는데 추후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다며 일선 직원들이 걱정했다”고 주장했다.
박씨의 스페인어 실력과 통역 내용을 둘러싼 잡음도 있었다. 당시 박씨는 페루 농민이 녹두농지를 보여줘도 ‘현장 생산량은 거의 없다’, ‘이전에 녹두를 재배했을 리가 없다’, ‘페루 농민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식의 통역을 했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세관 직원들은 현지인들이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 의구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역을 수상하게 생각했던 건 수출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페루기업 관계자는 “한국 통역사로 페루 수출자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박씨가 세관의 조사를 주도했는데 우리는 그가 어떤 정보를 통역해 전달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한국 세관의 조사를 받았던 페루 기업들이 한국의 수입기업들에게 ‘검증팀의 통역이 이상하니 주의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박씨의 존재를 불쾌하게 생각한 현지 수출기업도 있었다. 관세청이 동종업계 경쟁자인 박씨를 대동한 채 페루기업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로 인해 페루 현지의 수출자와 생산자들이 한국 세관의 조사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페루 수출자들이 현지 세관당국(MINCETUR)에 한국 검증팀의 통역에 문제가 있다며 직접 항의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문제가 커지자 페루 세관당국이 한국 측에 문제를 제기했고, 한국 관세청은 ‘더 이상 현장검증에 박씨를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회신했다. 조사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관세청의 입장과 달리 실제로는 현지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나서야 문제를 깨닫고 시정한 셈이다.
관세청 측은 왜 박씨를 통역사로 고용했는지, 페루 수출자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등을 묻는 말에 답변하지 않았다.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