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1) 유승관 기자 =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 승강기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0일 전세사기 피해와 관련해 피해 주택 경매시 일정 기준의 임차인에게 우선 매수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전 금융권의 경매공매 유예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3.4.2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이어 인천, 경기 구리, 동탄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전세사기 사례가 나오면서 ‘전세 포비아’가 퍼지고 있다. 전셋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전세 시세가 폭락하면서 ‘깡통전세’가 많아졌다. 이전 세입자가 낸 전세보증금만큼 내줄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가 불가능해졌다. ‘기망’의 의도를 가진 ‘전세 사기꾼’이 늘어난 게 아니라 전세시장이 무너진 것도 영향을 미쳤는데, 사회는 ‘사기꾼’과 ‘피해자’로 분열되고 있다.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전세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임대유형 중 전세가 여전히 ‘대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은 2만7617건인데, 이중 전세 거래량은 1만4903건으로 전체 거래의 54.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포비아가 퍼진 영향으로 12년만에 전세 비중이 가장 줄었음에도 월세보다 많은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빌라 등 다세대주택과 지방 아파트 등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에서 전세는 사라지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 대비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투자성이 떨어지는 물건이지만 직장 위치 등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매매 대신 전세를 선택한다. 매매를 하면 각종 세금을 내야 하고 ‘재산’으로 간주돼 무주택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놓치게 된다. 지방 구축 아파트 전세가율이 높은 이유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은 한때 지방에 무자금 갭투자가 성행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해 전국 집값이 빠른 속도로 크게 떨어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분자인 전세 보증금은 고정돼 있는데 분모인 매매값이 하락하면서 전세가율이 치솟은 것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전체 주택 전세가율은 2021년 75.8%에서 지난해 90.6%로 증가했다.이는 깡통전세가 대폭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깡통전세를 막기 위해서는 전세가율이 70%를 넘지 않도록 입법을 통해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세가율이 높으면 비교적 적은 자기자본을 갖고도 집주인이 될 수 있고, 전세사기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강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주택 전세금을 매매가의 7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며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 등을 실태 조사해 금융기관의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무자본 갭 투기와 같이 서민 눈물을 빼먹는 잘못된 부동산 투기는 허용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권리가 최대한 동등해지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며 ‘전세가율 70% 제한’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금융당국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피해자들이 집을 매수하거나 경매로 피해 주택을 낙찰받으려 할때 완화한 대출 규제 기준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임대인들에게 대출 규제를 풀어주는 게 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특히 다주택 임대사업자의 경우 DSR 등 각종 대출규제에 막혀 있다. 이들이 전셋값 하락으로 임차인에게 돌려줘야할 보증금 차액을 대출할 수 있으면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 주택이 경매로 매각되면 전세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해 ‘경매 중단’지시를 내렸지만 법제도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매는 사법부 관할로 법률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대통령 지시로 중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순위 임차인’이 있는 경우 입찰에 나서는 사람이 없다. ‘후순위 임차인’이 있는 경우 저렴한 시세로 낙찰이 이뤄진다. 이때 후순위 임차인이 임대인을 대상으로 회생개시신청을 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포괄적 금지명령’을 신청하면 진행 중인 경매를 중단시킬 수 있다. 박예준 법무법인 새로 변호사는 “살던 집에 계속 살며 회생관리 절차에 따라 추후 문제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차 계약시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도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전세사기대책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에 대한 제반 구제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며 “전세계약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에서 일정액을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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