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노동조합이 기획재정부, 조달청장 출신인 박춘섭 신임 금융통화위원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첫 출근길 피켓 시위를 벌였다.
한은 노조는 21일 오전 8시30분께 서울 중구 한은 본관 앞에서 이날 금통위원으로 취임하는 박 위원이 한은 금통위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의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노조 피켓에는 ‘통화정책 옥죄려고 현장파견 오셨나’, ‘조달청에는 손해배상 소송 중, 조달청장은 금통위원 임명’, 조달청장 금통위원 웬 말인가’라는 문구 등이 적혔다.
박 금통위원은 지난 5일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함께 이달 20일 임기가 종료된 주상영·박기영 금통위원 후임으로 추천됐다. 이날 취임식을 한 뒤 다음달 금통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한은 노조가 이날 첫 출근길에 오른 박 위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박 위원이 조달청장으로 지낼 당시 한은 통합 별관 공사에 입찰 문제가 생겨 한은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앞서 조달청은 2017년 12월 실시된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별관 건물 재건축 공사에 계룡건설을 낙찰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계룡건설보다 589억원을 적게 써내고도 낙찰을 받지 못한 삼성물산이 조정을 신청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후 감사원과 기획재정부 조사를 통해 계룡건설은 심지어 입찰예정가(2829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을 써낸 것으로 나타났고, 조달청은 결국 2019년 낙찰을 취소했다. 계룡건설은 이같은 조달청 조치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계룡건설의 손을 들어주면서 낙찰자 권한을 되찾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한은 통합 별관 공사는 2019년 말에야 착공이 이뤄졌다. 창립 70주년인 2020년 상반기 통합 별관에 입주하려 했던 한은의 계획은 무산됐고, 공사가 3년 정도 지연되면서 현재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삼성본관 임대료도 크게 늘었다.
한은은 지난 2월 조달청에 늘어난 임차료 등 손해액의 일부인 약 5억원 배상하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한은 노조는 이런 문제가 일어날 당시 조달청장이었던 박 위원이 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지명된 것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은 노조 관계자는 “조달청이 계룡건설을 낙찰자로 정하는 과정이 명쾌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한은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 현재 조달청과 소송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시 조달청장이 금통위원으로 오는 것은 한은 직원 입장에서 매우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각에선 박 위원이 기재부 관료 출신인 것 역시 한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에 해가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위원은 기재부에서 대변인,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총괄심의관과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예산실 실장을 지냈다.
한은 내부에선 기재부 장관이 한은의 인건비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 급여 상승률이 매우 낮다는 불만이 많은데, 기재부 고위공직자 출신이 금통위에 들어와 통화정책에까지 간섭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위원은 금통위원으로 임명되기 전 거시경제를 다뤄본 경험이 없고, 추천도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가 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도 박 위원은 정부 기조에 맞춰 금리인상에 신중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성향을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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