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 확대·지원을 최우선 목표로 내년도 예산을 편성한다.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는 꼭 필요한 곳에 투입하고, 현금복지 등 불필요한 지출은 차단한다. 지출비중이 큰 복지예산의 경우 사회적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집행할 방침이다.
부문별 예산투입 1순위는 ‘수출지원’
2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에는 수출에 예산을 전폭적으로 쓰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당장 4대 투자중점의 첫 번째 캐치프레이즈가 ‘수출 드라이브, 스타트업 코리아 추진 등을 통해 민간 경제활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전년도만 해도 ‘우리 경제의 확고한 반등과 도약을 뒷받침’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수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출 드라이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예산안 지침에서는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과 ‘신재생에너지 보급·확산 가속화’가 최우선 사항이었는데, 새정부가 출범하고 경제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수출로 우선순위가 바뀐 모양새다.
바뀐 전략에 따라 정부는 방산과 플랜트 등 유망분야를 중심으로 수출품목을 다각화하고 온라인·디지털 방식으로 수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는 예산을 집중 지원한다. 수입·수출선을 다변화하고 국산화 연구개발(R&D) 및 유턴·외국기업 유치에 나선다. 탄소국경조정제도처럼 깐깐해지는 글로벌 환경규제에 대비해 국내기업의 탄소저감 지원도 늘릴 예정이다.
특히 전년도에 없던 원자력발전산업 진흥책이 등장했다. 원전 기업을 육성하는 것뿐 아니라 원전 수출, 관련 R&D, 인프라 구축에도 예산을 투입한다. 원전산업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소·풍력 등 에너지신산업의 기술개발과 보급을 뒷받침한다. 이날 함께 발표한 기금운용계획안에도 전력기금을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원전생테계 강화, 해외진출 지원에 쓰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러한 기조는 줄곧 수출을 강조해 온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방향과 맞닿아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반부터 ‘모든 부처가 산업부’라고 강조해왔다.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스위스 순방 후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저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신발이 닳도록 뛰겠다”고 언급했다. 더 나아가 지난달 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수출 플러스(0.2% 확대)’를 목표로 제시하고 수출·투자책임관(1급) 자리를 신설해 부처별 수출목표액을 점검하게 했다.
이에 수출전략이 없던 부문에도 수출확대 정책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문화·체육·관광분야에서는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이 커진 만큼 콘텐츠와 연관산업 수출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환경 부문에서는 탄소중립·물·순환경제처럼 성장잠재력이 큰 3대 녹색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한국을 녹색산업 수출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지원은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와 환경기술 해외실증 등 다각도로 제공할 생각이다.
재량지출 10% 감축, 복지는 ‘약자’ 중심 재편
집중적인 투자와 함께 강도 높은 건전재정 기조도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경직성 지출이나 국정과제 등을 제외한 재량지출의 10% 이상을 감축할 방침이다. 재량지출은 전체의 100조~120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중 10조~12조원을 삭감하겠다는 의미다. 절약한 예산은 재투자 재원에 쓴다. 사회보장급여를 과다·반복수급하는 도덕적 해이도 근절하고, 공공부문은 인건비 증가를 최대한 억제한다.
최근 노조의 회계장부 미제출로 논란이 됐던 국고보조금은 부정수급과 부당사용에 페널티를 부여하기로 했다. 추진단을 통해 사업 모니터링과 부정사례 재발방지 방안을 강구한다. 또 부처 간 유사목적·기능 사업을 종합점검하고 사업 통폐합과 중복지급 차단에 주력한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부당하게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누수요인을 적극 찾아내겠다”면서 “경제적 효과에 대한 검증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금성 서비스 사업은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복지예산 역시 ‘약자’에 초점을 맞췄다. 약자복지 3대 분야인 복지사각지대 선제대응, 보장성 강화 등 두터운 지원, 자립기반 확충에 예산을 투입한다. 고립은둔청년이나 한부모가족처럼 새롭게 나타나는 복지 대상자를 지원하고, 저소득 취약계층에 존재하는 의료안전망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발굴·보완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돌봄지원의 사각지대도 해소한다.
정부는 한정된 예산에서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려면 약자를 우선지원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무지출 비중은 매해 증가해 올해 53.3%에 육박하고, 국채 이자 등도 늘어나는 등 재정상황이 녹록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다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복지예산을 더 늘리라는 압박이 거셀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 차관은 “정치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경제가 어려울 때 좀 더 힘든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적 예산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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