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과 크레디스위스(CS)에 이어 독일 도이치방크까지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글로벌 금융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침체가 깊어지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위기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코로나19와 기준금리 급등기를 거치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에, 이것이 은행 대출 부실을 키워 유동성 위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금융시장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의 계속된 긴축으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시장의 압박이 확대되고 있다. 오피스나 상가 등 비주거용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대출 비중이 높아 고금리에 취약한데, 지난 몇년간 코로나19로 공실률이 급증하고, 최근 SVB 파산과 같은 금융위기 우려까지 겹쳐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다.
영국 파이내셜타임스(FT)는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치방크의 주가가 급락한 것과 관련해서도 “상업용 부동산 리스크가 더 많은 걱정거리를 주고 있다”며 “도이치방크의 상업용 부동산(CRE) 대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 있고, 이는 경쟁사보다 많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앞서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도 미국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의 70% 이상인 약 2조3000억달러가 중소은행들 것이라며 은행 건전성이 크게 악화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우리나라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둘러싼 금융 불안이 상당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2021년 말 3만5000건에서 지난해 말 기준 1만5000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비교적 상황이 괜찮지만 지방의 비주거용 부동산은 침체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이들 사업장은 상당수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 대출이 많아 앞으로 금융 불안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 상황이 더 나빠져 사업 대출 연체율이 높아질 경우 은행은 담보물의 가치를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중소은행들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킨다. 또 전체 대출 규모를 줄여 유동성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한은과 Fed도 향후 부동산 침체가 금융위기를 앞당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PF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부실 위험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얼마나 더 침체하면 (금융권이) 위험한 상황이 되는지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관련 질문에 “중소은행의 CRE 집중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은행권 불안이 더 확대될 여지가 크지 않고 부동산 하락세도 둔화하고 있어 위기 가능성을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글로벌 금융 혼란을 넘어선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한국을 (투자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윤선정 NH선물 연구원은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 위기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은행은 상업용 부동산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이라면서도 “국내 5대 시중은행의 부실위험은 미미하고 비은행권 부실위험에 대한 대책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기에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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