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충격이 스위스의 세계적인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로 확산하며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와 국내은행의 대외 신용도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은행의 경우 파산한 SVB와 달리 금리인상기에 타격이 큰 유가증권의 비중이 낮고, 구조적으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더 확산해 우리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내외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전날 기준 42.58bp(1bp=0.01%포인트)로 하루새 0.51bp 낮아졌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보험 성격의 금융파생상품이다. 경제 위험이 커지면 통상 프리미엄도 올라가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의 부도 위험이나 대외 신인도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은 SVB 파산 직전인 지난 7일(41.15bp)에 비해선 다소 높아졌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긴축 공포에 74.98bp까지 올라갔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미국의 CDS 프리미엄은 전날 42.52bp까지 오르며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3월만 해도 13bp 수준에 불과했으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 이후 꾸준히 상승하다가 이번 SVB 파산 사태로 오름폭이 더 가팔라졌다. JP모건 등 미국 대형은행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고, 위기설에 휩싸였던 CS그룹도 지난 15일 1366.99bp까지 올랐다가 전날 스위스중앙은행의 자금지원 결정 뒤 1041.77bp로 떨어지는 등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은행권은 대외 신용도에 큰 변화가 없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의 CDS 프리미엄은 각각 42.34bp, 52.36bp, 45.18bp, 50.49bp로 이달 초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다. 역시 지난해 11월과 비교하면 20bp 정도 낮다. 유안타증권은 “미국은 CDS 프리미엄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급등한 이후 현재는 진정 중인 상황”이라며 “한국 금융시장이 상대적으로 SVB 파산 사태와 거리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은 늘어난 유동성을 주로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지 않고 대출에 활용했기 때문에 금리인상에 따른 피해가 적었다는 분석이다. SVB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증가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금리인상으로 채권가격이 급락하면서 손실을 입었고, 이로 인한 뱅크런으로 파산까지 했다. 우리 금융권에서도 저축은행 등 뱅크런 우려가 나오지만 대부분은 예금보호대상인 5000만원 이하 예금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 한은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우리는 뱅크런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도 이날 전 거래일 대비 12원 낮은 1301원에 개장하며 하락세를 보였다. SVB 파산과 CS 위기설에 전날 1316.9원까지 올랐으나 대형은행들이 제2의 SVB로 불리는 퍼스트리퍼블릭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하고, CS 위기설도 다소 완화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됐다. 미국과 스위스 등 각국이 개별 위기가 터질 때마다 신속하게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유동성 위기로까지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퍼진 영향이다.
다만 아직 미국과 유럽 등의 고금리 기조와 이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은 여전해 우리 금융·외환시장의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커져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하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계속되면, 원·달러 환율이 반등하고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은 등 금융당국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가 일단 진정됐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며 “유동성 경색, 대출자산 부실 등 금융 불안이 발생하면 자금 조달 여력이 부족한 기업을 통해 실물경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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