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독립 첫 발 뗀다…롯데·신세계·골든블루 ‘국산 위스키’ 도전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로부터 두달 뒤인 지난 3일 신 회장은 3년만에 롯데칠성음료 경영복귀를 선언했다.
신 회장의 신년사와 롯데칠성 경영복귀로 주목받는 사업은 단연 위스키 제조업이다. 위스키 제조 불모지인 한국에서 증류소를 짓고 제조까지 하려면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아가야 한다. 개인이 소규모로 국산 위스키를 제조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뛰어드는 것은 롯데가 처음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감귤공장 부지에 증류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인허가작업을 마치고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검토 중이다. 계획안에는 위스키 제조공정을 관람하고 시음하는 한편 위스키의 역사와 종류, 제조방법 등을 설명하는 박물관 설립 계획도 담겼다.
애주가로 소문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제주에 증류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특명은 신세계L&B가 받았다. 지난해 위스키 생산을 공식화한 신세계L&B는 W비즈니스팀을 꾸리고 증류소 설치를 위한 인허가를 준비하는 한편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형 위스키의 생산방법과 제품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지형에서 대형화된 증류소가 성공할 수 있을지가 연구의 핵심이다.
유력한 후보지는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신세계L&B 제주사업소다. 전신이 2016년 이마트가 인수한 제주소주의 소주생산공장이다보니 인허가 과정에서 유리하다. 제주소주가 소주 신제품 ‘푸른밤’의 실패 후 청산하고 신세계L&B에 흡수합병 되면서 제주소주공장의 역할도 애매해진 상황이다. 다만 지난해부터 신세계L&B가 소주사업을 재개하고 공장을 가동한 상황이어서 대체부지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사진 좌측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박용수 골든블루 회장 |
4년전 부산 기장에 관광형 증류소 건립을 계획했던 골든블루도 최근 사업계획서를 다시 꺼내들었다. 증류소 부지를 알아보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골든블루는 부산에서 자동차부품기업으로 성공한 박용수 회장이 부산 주류업체 수석밀레니엄을 인수한 후 성장시킨 국내 토종 위스키 기업이다.
박 회장은 2019년 골든블루 출시 10주년 자리에서 “위스키 원액을 직접 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골든블루는 자체 브랜드의 위스키를 판매하고 있지만 원액은 전량 수입하고 있다. 당시 골든블루는 증류소를 짓고 연간 100만명이 찾는 대만의 카발란 증류소처럼 관광명소화 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위스키 원액을 직접 생산할 뿐 아니라 제조과정을 견학하고 시음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52시간 도입과 김영란법(청탁금지법) 도입으로 고가 주류 소비가 급격하게 줄면서 증류소 설치 계획도 무기한 연기됐다.
주류업계는 최근 대기업들의 자체 위스키 제조시설 설립 추진을 주류사(史)에 있어 의미있는 사건으로 본다. 1980년대 진로, 오비 등이 국산 위스키 제조에 도전했다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포기한 사례가 있다. 그 사이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와 김창수 증류소같은 개인형 증류소가 한국형 위스키 생산을 시작한 상태지만 대기업까지 뛰어들면 전체 위스키 시장의 판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주류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시장환경이 좋아지면서 자본력있는 회사들이 위스키 원액 생산에 관심이 커진 것은 반가운 일”며 “미국, 일본, 대만과 달리 한국 위스키가 성장하지 못했던 배경에 과세체계가 있는 만큼 이를 개선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스타에서 자주 보이는 그 ‘술’…이유 있었다
지난 2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위스키가 진열돼 있다./사진= 뉴스1 |
소주파였던 A씨는 친구와 함께 따라 간 위스키 바를 통해 위스키에 흠뻑 빠져버렸다. 종류마다 한 잔씩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를 맛볼 수 있어서다. 위스키 종류마다 맛과 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최근에는 취향에 맞는 싱글몰트 전문 위스키 바의 단골이 돼 버렸다.
아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위스키가 이제는 2030 세대 핵심 주류로 성장하고 있다. 홈술·혼술로 위스키 시장에 입문한 2030 세대가 이제는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으로까지 영역을 확장 중이다. 위스키는 병당 가격은 높지만, 구매 후에도 오래 보관하고 마실 수 있어 가성비 트렌드와 함께 빠르게 주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코로나19 후 홈술·혼술 문화 확산…위스키 매출서 2030 비중 50% 넘어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편의점인 CU, GS25, 이마트24의 지난해 위스키 매출에 2030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GS25가 82.9%로 가장 높았고 이마트24(66%), CU(53.3%)가 뒤를 이었다.
2030 세대의 위스키 구매 비중이 큰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홈술·혼술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위스키 수입량이 늘었고 이를 통해 위스키를 즐길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2007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며 2019년 1억5393만달러까지 떨어졌던 위스키 수입액은 2020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2억6684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1억7354억달러)보다 52.2%가량 매출이 뛰었다. 연간 최대 수입액을 기록했던 2007년(2억7029만 달러)에 맞먹는 수준이다.
◇지갑 얇은 2030 세대 ‘가성비’ 위스키로 입문…프리미엄 확장 추세
위스키 수입량 증가로 위스키 종류와 가격대가 다양해진 덕분에 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2030 세대가 위스키에 입문할 기회도 커졌다. 지난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위스키 매출에서 10만원 미만 가성비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3.6%, 74%, 65%에 달했다. 가성비 있는 위스키를 통해 위스키에 입문한 2030 세대가 많아진 영향이다.
최근에는 2030 세대가 프리미엄 위스키로 저변을 넓히는 추세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가격대별 매출 구성비에서 10만원 이상 프리미엄 위스키 판매 비중은 전년도 23.4%에서 26.4%로 3%P가량 증가했다. 2030 세대의 위스키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30 세대가 프리미엄 위스키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중에서도 2030 세대에게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위스키는 ‘싱글몰트’ 위스키였다. 롯데마트의 싱글몰트 위스키 매출은 2021년에만 6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80%에 달하는 신장률을 기록했다. 이마트에서도 위스키 내 싱글몰트 위스키 비중이 2021년 15.3%에서 지난해 18%로 증가하는 추세다.
위스키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의 위스키 매출은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2021년에도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신장세를 보여준 바 있다. 홈플러스(39%), 이마트(30.5%) 역시 30%가 넘는 매출 신장률을 기록 중이다.
◇싱글몰트·하이볼 인기…단독 상품으로 차별화 전략 나선 유통家
위스키 인기가 나날이 커지면서 국내 유통업체들은 차별화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17일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서 생산한 고급 싱글몰트 위스키인 ‘그렌지스톤 싱글몰트 스카치 위스키 3종’을 단독 출시했다. 미국산 오크통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숙성한 퀄티리를 자랑한다. 일본식 하이볼 인기에 힘입어 이마트24는 일본 위스키 ‘코슈 니라사키’ 2종을 단독 판매 중이다. 이 밖에 CU·GS25·세븐일레븐 등도 인기 위스키를 한정 수량 판매하는 오픈런 행사를 열고 위스키 수요 공략에 나서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고객층이었던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개성을 추구하며 취향을 중시하는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위스키 문화가 퍼지면서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독특한 맛과 향 등 특색이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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