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가상자산(암호화폐) 친화 은행 중 하나인 실버게이트캐피탈(이하 실버게이트)이 결국 청산을 선언했다. 가상자산 폭락과 FTX 파산 등 가상자산 업계의 혼란 속에 주류 은행 시스템에서 첫 희생양이 나오게 됐다는 평가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실버게이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최근 업계와 규제 상황을 볼 때 은행 영업을 중단하고 자발적으로 은행을 청산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고객 예금은 전액 상환하고 대출도 성실히 이행해 질서 있게 퇴장한다는 계획이다.
뉴욕증시에서 실버게이트 주가는 이날 정규장에서 5.76% 떨어진 4.91달러(약 6484원)로 거래를 마친 뒤 청산 발표에 시간 외 거래에서 43% 넘게 곤두박질쳤다. 가상자산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도 2만200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다만 낙폭은 1% 수준에서 제한됐다.
실버게이트의 청산 결정은 파산 우려가 제기된 지 6일 만에 나왔다. 지난 1일 실버게이트는 2022 회계연도에 대한 연례보고서(10-K) 제출을 연기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코인베이스와 갤럭시디지털 등 주요 고객사는 신속히 실버게이트와의 관계 단절에 나섰다 나섰다.
실버게이트는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모기지 전문 은행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을 주력 사업으로 하다가 2013년 가상자산을 사용하는 고객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전문은행으로 탈바꿈했다. 고객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달러를 이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제공하며 주요 거래소를 고객사로 뒀고 비트코인을 담보로 기관 투자자에 대출도 제공했다. 한때 고객 예치금이 140억달러에 달했고 2021년엔 주가가 200달러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를 맞은 데다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 끝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실버게이트도 직격탄을 맞았다.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FTX와 긴밀히 거래하던 실버게이트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에 나서면서다. FTX 파산이 가상자산 업계의 연쇄 유동성 위기로 번진 셈이다. 여기에 법무부 조사를 포함한 규제 단속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CNN은 실버게이트 파산은 암호화폐 시장의 혼란이 주류 은행시스템으로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다만 실버게이트 청산이 다른 주류 은행들의 도미노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디지털 전문 투자자문사 루미나웰스의 램 알루왈리아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실버게이트가 예금을 상환하고 대출도 이행한다고 밝힌 만큼 위기가 전염될 위험은 작다”며 “그보다는 실버게이트 결제 인프라가 사라지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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