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기업 대출에 집중해온 미국의 SVB 파이낸셜 그룹이 예금 급감으로 자산을 매각한 결과 18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밝혀 9일(현지시간) 미국 은행주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폭으로 폭락했다.
실리콘밸리 뱅크의 모기업인 SVB의 대규모 손실 사태로 미국 4대 은행인 JP모간,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웰스 파고, 씨티그룹은 이날 시가총액 520억달러가 날아갔다. KBW 은행 지수는 7.7% 급락해 3년 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했다.
은행주 폭락 사태의 주범인 SVB는 주가가 60% 이상 폭락했다. SVB는 전날 오후 늦게 자산 매각으로 18억달러의 세후 손실을 입었으며 보통주와 우선주를 새로 발행해 22억5000만달러의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 팩웨스턴 뱅코프가 25%,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가 17%, 찰스 슈왑이 13% 급락했다, U.S. 뱅코프는 7% 내려갔고 미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인 JP모간 체이스는 5.4% 하락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은행주 폭락 사태가 연준(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으로 낮은 금리로 발행된 채권들의 가치가 급락했고 이런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은 자산 가치 하락에 따라 엄청난 장부상 손실을 입고 있다.
다만 이는 평가손실일 뿐 미실현 손실이기에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유한 채권 가격 급락으로 평가손실을 입은 은행이 예금 인출 사태를 맞아 이를 만회하고자 자산을 매각하게 되면 위기에 빠진다. SVB가 딱 이런 사례다.
SVB는 기술기업들이 코로나 붐을 경험했던 2021년에 자산과 예금이 86% 늘어났고 SVB는 이 자금으로 미국 국채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연준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SVB가 보유한 국채와 정부 보증채권의 가치는 폭락했다.
더 큰 문제는 실리콘밸리 뱅크의 주고객인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들이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자 예금을 인출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 뱅크는 지난해 2~4분기 동안 예금이 13% 감소했고 예금 인출은 올 1월과 2월에도 계속됐다.
전날(8일) 자발적 청산을 발표한 10대 암호화폐 전문은행 중 하나인 실버게이트 캐피탈도 SVB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실버게이트는 전날 암호화폐 시장의 폭락으로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이 벌어져 큰 손실을 감수하고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팔아야 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은 시가가 하락해 평가손실을 낼 수는 있지만 만기 때까지 보유하고 있으면 원금과 약정된 이자를 모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SVB와 실버게이트는 예금이 급감하자 어쩔 수 없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시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팔아야 했던 것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현재 미국 은행들의 매도가능증권과 만기보유증권에서 발생한 평가손실은 6200억달러로 1년 전 80억달러에 비해 급증했다.
미국 은행들이 코로나 팬데믹 때 예금이 늘어나 채권 보유를 늘린 것도 금리 인상에 따른 평가손실을 부풀리는 역할을 했다.
FDIC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2021년 말까지 미국 은행들의 국내 예금은 38%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대출은 7%밖에 늘어나지 않아 은행들은 예금으로 쏟아져 들어온 현금을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일 때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연준에 따르면 미국 민간 은행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53% 급증한 4조5800억달러에 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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