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쿠퍼 AEI 선임연구원/사진=AEI 홈페이지 |
미중 갈등이 상품 무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으로 확대하면서 기존 글로벌 무역질서의 지각변동을 초래한다. 지난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출 통제와 함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 등 주요 경제안보 제도를 출범시켰던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구축을 강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집권체제를 수립한 중국은 미국의 견제 속에서 전기차, 반도체 등에서의 기술 독립과 자립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핵심 기업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4월 26~28일 열리는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3 키플랫폼'(K.E.Y. PLATFORM 2023)은 대한민국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중 패권 경쟁을 집중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갈수록 첨예하게 날을 세우는 양국은 각각 어떤 전략적 선택이 가능한지, 두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하게 대응할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미국의 대(對) 중국 및 아시아 정책 전략 전문가인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머니투데이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과의 인터뷰에서 미중이 서로 ‘디커플링'(탈동조화) 중이지만 중국을 미국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미국에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을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전략적 재결합이 중국 정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퍼 박사는 AEI에서 동맹 역학과 미중 경쟁을 포함한 아시아에서의 미국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으며 ‘워 온 더 록스(War on the Rocks)’의 팟캐스트를 공동 주최한다. AEI 합류 전에는 전략 및 국제연구센터(CSIS)에서 아시아 안보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또 민주주의 확보를 위한 연합 공동 이사, 미국 독일 마샬 기금 선임연구원, 전략 및 예산 평가 센터 연구원을 역임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테러리즘 퇴치를 위한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국방부에서 국방부 정책담당수석부차관보 특별보좌관 등을 맡았다.
다음은 쿠퍼 선임연구원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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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질서가 미중 갈등으로 블록화하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무역질서는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나?
▶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 두 개 블록으로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 세계는 훨씬 더 다극화된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보조금 지원을 통해 자국 기업과 경제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세계는 개방무역에서 관리무역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향후 국제 무역질서는 보안에서 경제, 기술,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련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연합이 결성될 것으로 본다.
-결성된 연합들은 어떤 특성을 지닐 것으로 예상하나?
▶우선 기존 단극에서 다극(Multipolarity)으로의 특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한 단극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는 인도, 중국 등이 꾸준한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미국에 대한 신뢰 약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동맹을 홀대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들을 다시 포용한다. 미국 정부는 한때 자유 무역을 옹호했지만 이제는 다수가 보호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요컨대 과거에는 많은 국가들이 안보를 위해 미국을, 경제 성장을 위해 중국을 찾았지만 오늘날에는 어느 쪽도 확실한 선택이 아닌 것이다.
동맹에서 정렬(Alignment)로의 변화도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동맹은 군사 협력 중심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경제, 기술 및 외교적 요소를 포함한다. 결과적으로 동맹은 종종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전체 정부 또는 전체 사회의 약속을 나타낸다. 그래서 동맹은 고도로 공식화하는 경향이 있어 길고 힘든 합법적인 협상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각국 지도자들이 국제 협정에서 더 큰 유연성을 추구함에 따라 동맹의 매력은 줄어들고 이슈와 문제에 따른 정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정렬의 특성은 한 국가가 기존 동맹과는 서로 다른 국가와도 공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도는 러시아와 긴밀한 경제적 동맹을 유지하는 한편 미국과는 안보 동맹을 강화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식적인 동맹국은 아닐 수 있지만 많은 분야에서 명확하게 협력한다. 공식적인 동맹조약이 없는 일본과 호주도 마찬가지다.
다자주의에서 축소주의(Minilateralism)로의 변화도 일어난다. 세계가 더욱 다극화되고 정렬이 더욱 유연해짐에 따라 많은 국가를 포함하는 다자간 그룹은 합의도 힘들고 관리가 어렵다. 그보다 소규모 문제별 그룹으로 협정을 체결하고 이니셔티브를 구현하는 것이 용이하다. 물론 동맹조약에 기초한 기존 다자간 제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국의 목표와 이해관계 달성을 위해 지도자들은 특정한 사안에 따른 소규모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미중 패권경쟁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미국과 중국은 모두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는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체제가 성공하고 상대국 체제는 실패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옳을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미국인으로서 미국 체제가 몇 가지 구조적 장점이 있다고 확신하지만 정치적 역학에 우려되는 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미국 기업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더욱 빈번해지고 표적화되며 노골화하고 있다. 과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을 피하기 위해 모호한 정책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압박을 감추곤 했다. 일례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들을 경제적 압박이 아닌 단순한 무역 분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최근엔 경제적인 강압을 훨씬 분명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중국 내 국가 주권·안보·개발이익을 위협할 경우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리스트’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위협한다. 이러한 추세는 향후 경제적 압박의 빈도와 대상, 강도를 증가시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행동을 저지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과 미중 간 디커플링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선택적 디커플링’은 중국의 불안정한 경제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동시에 중국이 미국에 대해 강압적인 경제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위험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 중 가장 간과되는 방법 중 하나가 특정 영역에서의 더 깊은 결합이다. 즉 중국을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중국 정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의 일부가 돼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주제였지만 대부분은 주변부에서 발생했다. 양국의 교역 데이터는 미국과 중국 경제가 여전히 서로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상호 의존이 무기화될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우려한다. 중국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의 선도적인 기술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하는 것을 막아 왔다. 사실 미국이 디커플링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동안 중국이 취한 방식대로 동등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뿐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은 주로 안보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디커플링과 반대되는 움직임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으며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한편에선 잠재적으로 디커플링에서 전환해 중국과의 무역을 확대하려 노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중국의 수단을 강화시키고 불공정한 중국의 경제 관행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전략적 재결합이 잘 수행된다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오히려 확대시킬 수 있다.
주요 동맹국들과 신중하게 조율한다면 중국과의 전략적 재결합은 중국 정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전략적 재결합을 위해서는 수출을 규제하기보다 핵심 분야에서 중국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유지하거나 심화시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은 남의 기술을 훔치는 데 놀랍도록 뛰어나지만 이것이 경제 전체에 걸쳐 이루어질 수는 없다. 중국은 미국의 수입품과 기술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런 현실을 피할 수 없다. 선택적 분리와 전략적 재결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둘 다 중요한 도구이며 방어와 공격 조치를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이미 중국이 하고 있는 일로, 이제는 미국이 게임에 복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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