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영업이익만 8조원 넘게 벌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3년간 우리 진단 기업의 활약은 대단했다. 국내 주요 10개 진단 기업(에스디바이오센서 (24,050원 ▼1,050 -4.18%), 바이오노트 (7,980원 ▼120 -1.48%), 휴마시스 (14,870원 ▲220 +1.50%), 랩지노믹스 (6,390원 ▼170 -2.59%), 바이오니아 (51,100원 ▼1,800 -3.40%), 제놀루션 (11,090원 ▼150 -1.33%), 수젠텍 (8,440원 ▼150 -1.75%), 씨젠 (24,100원 ▼1,750 -6.77%), 엑세스바이오 (10,790원 ▼230 -2.09%), 오상헬스케어)이 2020~2022년 3년간 거둔 영업이익(컨센서스 포함, 씨젠·엑세스바이오·오상헬스케어는 2022년의 경우 3분기 누적 실적 기준)은 약 8조4266억원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다.
양질의 진단 제품 공급으로 글로벌 팬데믹 대응에 기여했단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또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바이오 산업의 변방에 머물던 진단이란 영역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맞아 K진단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제 만들기만 하면 수요가 넘치던 코로나19 진단 시장은 사라졌다. 주요 진단 기업의 실적 역성장은 이미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우리 진단 산업이 기술 고도화, 해외 시장 공략 등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위를 굳건히 할지, 팬데믹 시기 운 좋게 일회성으로 떼돈을 벌고 사라지는 그저 그런 사업으로 그칠지는 지금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엔데믹을 앞둔 지금. 백신과 치료제와 달리 국내 진단 기술이 어떻게 팬데믹 국면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했는지 살피는 일은 우리 바이오 산업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엔데믹 시기 우리 진단 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업계 전반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K진단은 어떻게 떼돈을 벌었나
국내 진단 기업이 팬데믹 초기 비교적 발 빠르게 코로나19 진단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공급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진단 업계 현장에선 국내 진단 기업들이 팬데믹이 오기 전 큰돈을 벌지 못하면서도 수년간 연구 개발에 전념하며 쌓은 기술 경쟁력을 첫손에 꼽는다. 다양한 질환과 질병에 대한 여러 종류의 진단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보다 빠른 코로나19 대응이 가능했단 설명이다.
또 한 가지 핵심 요인으로 정부와 협업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국내 진단 기업들에 바이러스주를 분양하고 진단 제품 개발 과정에서 긴밀히 협의하는 등 민간 업계와 활발하게 협업했다.
특히 우리 정부는 긴급승인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 박자 빠른 품목허가로 국산 코로나19 진단 제품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도왔다. 팬데믹 초반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받은 한국산 코로나19 진단 제품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품질을 앞세워 여러 나라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이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규제기관과 민간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약·바이오는 시장 선점 효과가 크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로 엄청난 이익을 창출한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시장 선점 효과를 들 수 있다. 그만큼 신속한 개발과 규제기관의 승인이 중요하단 의미다.
한 진단 업계 관계자는 “진단 시장이 척박한 환경임에도 다수의 국내 기업이 사스와 메르스 등 감염병이 확산할 때 실전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 역량을 꾸준히 확보한 게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선제적 대응에 주효했다”며 “또 코로나19 진단 제품 개발과 생산능력 확보, 인허가 등 모든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 부처 등 관련 기관의 신속한 협업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 시기 K진단의 성공 교훈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함께 공유하며 발전의 계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기초 기반 기술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 시장과 규제기관의 신뢰 확보 및 협업 등이 시너지를 내야 후발주자인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진단은 끝물? 선진시장 승부·기술 고도화가 살길
우리 진단 업계가 ‘끝물 아니냐’는 부정적 평가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남아있는 과제가 적지 않다. 주가가 급등한 뒤 급락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개인투자자가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무엇보다 국내 진단 업계가 팬데믹 때 외형을 키운 만큼 그에 맞는 내부 시스템 정비, 펀더멘탈(기초체력) 강화, 시장과 소통 확대 등 내실 있는 경영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팬데믹 국면에서 번 막대한 자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해외 시장, 특히 규모가 큰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엔데믹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일부 긍정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경우 최근 미국 진단 기업 메리디안바이오사이언스를 약 2조원에 인수하는 등 대규모 M&A(인수합병)를 완료했다. 메리디안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셈이다. M&A의 궁극적인 성적표는 향후 시너지 효과 등을 살펴야겠지만 비교적 신속하게 대형 M&A에 나서며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단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진단 기술 고도화와 영역 확장, 더 나아가 진단의 디지털 전환 및 예방의학과 접목 등 꾸준한 연구와 새 시장 창출이 뒷받침돼야 한다. 팬데믹 전이라면 우리 진단 업계가 감히 도전하기 힘든 영역이다.
그만큼 우리 진단 업계가 팬데믹 때 확보한 해외 시장 영업망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진단 제품의 신속한 개발과 대량생산 및 글로벌 공급 노하우, 탄탄한 자금력 등이 강력한 무기란 뜻이기도 하다. 다양한 국가에 진단 제품을 수출하며 판로를 개척했고, 여러 나라에서 인허가를 획득한 경험을 얻었다. 이 같은 자산은 향후 다른 팬데믹이 올 때 우리 진단 업계가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진단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며 전체 규모를 키우고 더 나아가 우리 국민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진단 업계 오너와 경영진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다. 일부 진단 기업의 경우 법인의 이익 분배 문제를 두고 소액주주와 다툼을 벌이고 있고, 일부 오너는 팬데믹 시기 창출한 부를 바탕으로 지분을 매각해 큰 돈을 손에 쥐었다. 물론 기업 오너의 차익 실현 그 자체를 나쁘게 볼 수 없단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업의 미래 가치, 시장과 소통, 주주와 관계 등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추후 더 따져볼 일이다.
유철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은 “코로나19로 국내 진단기업의 면역화학검사 기반 신속진단키트가 해외에 많이 팔렸다”며 “앞으론 자가혈당측정, 현장진단, 분자진단, 혈액진단, 조직진단, 진단화학 검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시약과 검사기기, 측정기기, 체외진단 소프트웨어, 조직병리기기 등을 개발하고 상업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특히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디지털 전환을 통해 대량 진단, 적용 질환 확대, 플랫폼 기반 기술 구축 등에 나서야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며 “전 세계 체외진단시장은 2026년까지 1400억달러(약 179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 진단 기업이 얼마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진단 기업의 투철한 노력은 물론이고, 이에 더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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