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서울 전세가격이 급격히 내리면서 세입자가 ‘갑’, 집주인이 ‘을’이 됐다. 새 계약을 앞둔 세입자는 수억원대 보증금 일부분을 돌려받거나 상급지 또는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반면 집주인은 시세차이만큼 돌려줘야해 급전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례도 여럿이다. 전셋값 추락에 거래절벽 현상까지 겹치면서 나온 결과다.
17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들어 전국 전세가격은 4.55% 하락했다. 서울(-6.08%)과 경기(-6.53%), 인천(-5.68%) 등 수도권 누적 하락률이 전국 평균보다 더 크다. 서울에서는 금천(-7.23%), 강서(-7.06%) 등 외곽 지역은 물론, 대표 학군지인 양천(-8.39%), 강남(-7.14%)에서도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전셋값은 2020년 7월말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이 후 급격히 올랐고, 지난해 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전세 만기 기간인 ‘2년’ 사이에 급등과 급락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재계약을 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는데 30% 이상 가격이 하락하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힐스테이트1단지 84.24㎡ 전세는 2021년 3월 최고 14억2000만원에 실거래됐다. 현재 최저가 전세 매물은 9억원 수준으로 5억2000만원 낮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 84.93㎡ 전세는 2021년 1월 최고 11억원에 실거래가 이뤄졌다. 현재 전세 매물은 7억3000만원부터 가격을 형성했다. 4억7000만원 차이가 벌어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2021년 1월 전용면적 76㎡ 전세가 9억원, 10억원에 각각 계약됐는데 현재 매물은 4억원대 중반으로 반값까지 떨어졌다.
2년계약을 채운 세입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다양하다. 살고 있던 집의 계약을 연장하면 낮아진 시세와 보증금의 차이만큼 보증금을 깎을 수 있다. 수중에 목돈이 생기는 셈이다. 환경의 변화가 꺼려진다면 같은 단지 큰 평수로 이사하는 선택도 가능하고, 아예 지역을 옮기는 것도 충분하다.
하지만 집주인 입장에선 난감하다. 당장 큰 돈을 마련해야 한다. 대출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특히 2020~2021년 집값 폭등 시기 비싼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감행한 투자자들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전셋값이 크게 내렸지만 새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다. 금리가 오르고 대출 환경이 열악해진 탓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전세 거래건수는 지난해 2월 1만3002건에서 지난달 8802건으로 30% 이상 줄었다.
전세계약 갱신 시기를 극복하지 못한 악성 갭투자 매물이 경매 등으로 시장에 급매로 나오면 가격 급락 분위기를 더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수도권 전세시장은 입주여파 등으로 대단지 위주 하락세가 두드러진다”며 “전방위적 규제완화에도 고금리, 경기침체 우려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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