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 국가공무원 5급 공채 및 외교관 후보자 선발 제1차 시험이 치러진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인사혁신처 제공)2022.2.26/뉴스1 |
“공직에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처우도 처우지만 업무 만족도가 떨어져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을 만들고 싶어서 왔는데 비효율적 업무 배분 때문에 정책을 분석하거나 검토할 시간도 없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안 들고 누구보다 힘들게 일하는데 ‘철밥통’이라는 외부인식도 서럽습니다.”(중앙부처 30대 사무관 A씨)
정부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공무원들이 공직사회를 떠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며 연봉 상한 폐지, 성과주의 확산 등 ‘정부개혁’을 예고했다. 연봉 등 ‘처우’에 대한 해법 마련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돈’ 뿐 아니라 업무 만족도, 효율성 등에 대한 갈증도 적잖다.
중앙부처 30대 사무관 A씨는 정부의 “공직에서 네이버나 대기업 등으로 나간 친구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단지 연봉만 보고 이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엔 사무관이 되면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명예와 자부심이 있었다”며 “조직이 그런 부분을 못 챙겨주고 부품처럼 버틸 때까지 인력을 갈아 넣는다는 생각만 든다”고 설명했다.
A씨가 가장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은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과 비효율적인 업무 지시다. A씨는 “MZ세대가 보기엔 업무를 위한 업무,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장관 주재로 회의를 하면 실장 주재로 국장 회의를 하고 국장은 과장을 불러서 회의하고, 과장은 사무관들을 불러서 회의하는 관료제 특성이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윗사람들의 단순 궁금증 해결을 위해 개인의 인생과 국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될 때 회의감이 든다”며 “동기들과 ‘또 쓸 데 없는 거 때문에 야근하고 있다’는 얘기를 거의 매일 하는데 사기업에 간 사람들은 충분한 업무시간을 갖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해서 업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30대 사무관 B씨도 “국회에서 회의가 수시로 열리다 보니까 외부에 대응하는 업무들이 굉장히 많다”며 “차근차근 정책을 보고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기업은 52시간제를 굉장히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공무원들은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업무 강도가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MZ세대 사무관들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공직 생활에서 하고 싶은 일, 즉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해진 만큼 이를 정부개혁에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무관 C씨는 “예전엔 1등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경제 부처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워라밸'(일과 일상 생활의 균형)도 중요해졌고 각자 생각대로 부처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난해 5급 수석으로 합격한 사무관이 해양수산부에 간 것도 개인적인 관심사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연봉을 높이는 것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성과체계 도입과 관련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공직도 사기업과 다르지 않아 도입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정책을 만드는 행정부 업무 특성상 단기 성과를 계량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제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성과체계 도입과 관련 “아무래도 특정 업무에 외부 전문 인력을 영입할 때나 가능한 연봉체계가 아닌가 싶다”며 “공정위 같은 기관은 현재 경제사법기관으로 불리는데 정책 세일즈를 하는 측면과는 멀어보인다”고 말했다.
사무관 D씨도 “윤석열 대통령이 10억 원 이상의 공직자 연봉 지급과 성과체계를 언급한 건 우주항공청 설립 추진과 관련된 것이고 일반 공무원들한텐 적용이 어려울 것 같다”며 “일반 기업 영업사원들은 영업 실적이 오르면 연봉이 높아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고 검찰 조직도 승소율에 따라서 성과를 측정할 수 있겠지만 정책을 만드는 업무는 당장 실적으로 나타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MZ세대는 ‘공정’을 원하는데 과연 객관적으로 성과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있을지 회의적이고 연공서열이나 소위 ‘사내 정치’도 고려하지 않을지도 의문”이라며 “한 달에 쓰는 보고서의 양에 따라서 성과를 매긴다고 해도 이미 불필요한 보고서가 넘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무관 E씨는 “싱가포르 같은 곳은 공무원 임금 수준이 민간 부분과 비슷하거나 좀 더 높은데 한국 공무원 임금 수준은 비슷한 민간 부문의 70~80% 수준”이라며 “특히 8~9급 공무원은 실수령액이 200만원도 안 돼서 임금을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지만 과연 연봉 10억원이나 성과체계 개편이 낮은 직급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 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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