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뉴스1) 일본 엔화 일러스트. 2023. 1. 17.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지난 1월 국채 매입에 역대 최대 금액인 23조 6902억 엔(약 225조 원)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발행 국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일본은행이 대규모 국채를 매입한 것은 국채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무제한 매입하는 ‘수익률곡선통제(Yield Curve Control, YCC)’정책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일본은행은 10년 물 국채금리 상한 변동 폭을 0.2%에서 0.5%로 확대하는 사실상의 금리 인상을 전격 결정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긴축 기조 속에서도 제로금리를 유지했던 일본은행도 금리 인상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해석했지만, 1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앞서 결정한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오는 4월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퇴임과 함께 YCC 정책이 종료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엔화 강세와 함께 국채금리가 다시 상승할 조짐을 보인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일본은행이 YCC 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는 다양한 배경들을 살펴보고 향후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 시 파급 영향을 짚어봤다.
일본은행 YCC는 어떻게 도입됐나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의 극심한 불황과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2년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과 대규모 재정지출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를 시행해 왔다. 시행 이후 몇 년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률을 하락했으며 성장률도 상승하면서 잃어버린 일본 경제를 다시 찾은 듯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물가는 다시 0%대로 하락했고 상승세를 보이던 경제지표들은 하나둘씩 꺾이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가 다시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던 2016년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는데 장기금리가 마이너스였던 단기금리 밑으로 과도하게 하락하자 10년 물 국채금리를 0%에 고정시키는 YCC 정책을 단행했다.
(도쿄 AFP=뉴스1) 도쿄 일본은행 입구.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일본은행은 정부의 국채 발행으로 장기금리가 상한선인 0% 위로 튀어 오를 때마다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함으로써 금리를 0% 수준에 묶어둘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최근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는 긴축 기조 속에서도 디폴트 걱정 없이 국채 발행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경기부양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YCC를 통한 무제한 국채 매입에도 불구, 근원물가는 최근까지 0%대에 머물면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
일본은행의 YCC 정책 전환이 불가피한 배경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주요국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일본은행만큼은 마이너스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소위 ‘미스터 BOJ’라 불리며 통화정책을 지휘해왔던 구로다 총재는 오는 4월 임기가 종료된다. 시장에서는 그가 물러나게 되면 일본은행도 YCC 정책을 포기하고 금리 상한선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 배경으로는 먼저 일본 정부의 막대한 부채 부담이 꼽힌다. 2022년 기준으로 일본 정부의 부채비율은 GDP 대비 263%에 달한다. 2023년 예산 규모는 약 114조 엔으로 사상 최대 규모지만 내년에도 35조 엔 가량의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세수를 충당할 계획이다. 발행한 국채 원리금 부담액은 약 25조 엔으로 본예산의 21%가 고스란히 국채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소요된다.
YCC로 장기금리가 고정되고 미국과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폭락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2022년 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던 엔화 가치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자 150엔 수준까지 폭락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수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수입가격이 폭등하면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악화를 가져오고 내수 기업의 침체와 가계 실질 소득 감소 및 소비 부진을 초래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24년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약 500억 달러(약 65조5000억 원)을 소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 물가 폭등으로 지속되는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 악화 역시 부담되는 요인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무역수지는 19조 9713억 엔(약 192조 원) 적자로 1979년 이후 최대 규모다. 해외투자 소득 및 배당이 큰 일본은 경상수지가 줄곧 흑자를 기록해왔지만 지난해 10월에는 경상수지마저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도쿄 AFP=뉴스1)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인플레이션 부담이 가중되면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통화정책의 명분도 약해졌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극심한 불황과 저물가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지난 12월 일본 소비자물가는 무려 4.0%를 기록했는데 이는 41년 만에 최고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초래하는 무제한 국채 매입을 지속하는 것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일본은행의 보유자산 또한 크게 늘었다. 수익률 제어를 위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다 보니 일본은행의 총 보유자산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2022년 1월 기준 일본은행의 총자산은 약 734조 엔으로 GDP 대비 약 130%에 달한다. 이는 미 연준의 33.6%, 유럽중앙은행의 60.3%와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시장은 이러한 일본은행의 YCC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점엔 수정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다.
YCC 정책을 수정하면 어떤 문제 생기나
일본은행이 YCC 정책을 포기 또는 수정하는 것은 단순히 일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본 미즈호증권은 BOJ가 YCC를 폐기할 경우 현재 0.25%로 제한된 10년 물 국채 금리가 1%를 넘길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사실상 금리 인상 조치로 인식되기 때문에 일본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 영향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먼저 일본은행의 YCC 정책이 변화되면 금리 인상으로 정부의 부채 부담은 물론 기업의 부담도 커진다.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있는 일본 정부는 금리 상승 시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지고 향후 국채 발행 부담 역시 커질 수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인상되면 국채 이자 부담은 약 3조 7000억 엔(약 35조 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제로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연명하던 기업들도 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일본의 금리가 인상되면 국채가격 폭락에 따른 손실을 우려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연쇄적인 국채 매도가 발생한다. 이는 536조 엔에 달하는 엄청난 국채를 보유한 일본은행의 대규모 손실은 물론 연기금 및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산의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 국채 및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일본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22년 8월 기준으로 약 1조 2000억 달러에 달한다. 향후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허용되면 미 국채의 큰 손으로 통하는 일본은행의 미 국채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미국 국채가격도 급락하고, 미국 주식시장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혼란도 우려된다. 일본이 보유한 해외자산규모는 약 9조 9600억 달러에 이르며 채권은 5조 7000억 달러, 주식은 3조 7000억 달러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뤄진 글로벌 스케일의 금융완화는 연준의 힘도 컸지만 일본 초저금리의 역할도 상당했다는 평가가 많다. 주요국 중 유일하게 양적완화를 유지해 온 일본의 금리가 오르면 이는 강력한 글로벌 긴축의 신호로 인식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급격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저금리 통화인 엔화를 빌려 해외에 투자된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대규모 청산도 우려된다. 캐리 트레이드의 속성상 최초 거래 시점보다 엔화가 강세가 되면 환차손이 발생하게 된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환차손과 함께 미국과의 금리차도 축소되면서 투자 자금이 주요국 금융시장에서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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