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첫번째)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더불어민주당의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입법 방침에 대해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해외 시장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맞불놓기’식 입법은 실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탄소저감 기술 등 성장이 필요한 산업에 대한 지원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 기업에만 적용한다’는 식의 차별적·배타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한국판 IRA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난해 제정·발효한 IRA는 미국 내 생산과 원자재 사용을 조건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에 보조금(세액공제)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해 말 유럽으로 수출되는 제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에 대해 배출권(인증서)을 구매·첨부하도록 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합의하고 반도체법·배터리법·핵심원자재법 등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민주당의 IRA 입법 방침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가 자국 혹은 역내 산업 보호정책을 쏟아내는 것에 대한 우리 정부의 통상 대응을 강화해야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직 한국판 IRA 법안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면서도 차별적 지원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과 유럽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각각 93억8000만달러(약 11조7300억원), 63억1000만달러(약7조8900억원)어치 상품을 수출한 지역으로 중국·아세안에 이어 우리나라의 3·4위 교역국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익이 미국·유럽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큰 비대칭적인 시장인 만큼 미국과 EU 행정부의 자국보호 움직임에 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할 수 없다는 게 산업부 측의 설명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충분히 크면 괜찮지만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 규모가 작아 우리기업은 해외 시장에서 먹고살아야한다”며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상황에서 맞불을 놓는다는 것은 자칫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통상현안 대응의 명분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시행된 미국의 IRA와 유럽의 CBAM 등 통상 현안에 대해 “차별적 조치를 방지해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주로 WTO(세계무역기구)나 FTA(자유무역협정)에서의 규범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 혹은 수출을 하는 우리 기업에도 차별성 없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국내 기업에 대한 차별적 지원을 담은 한국판 IRA를 추진할 경우 정부의 대외 협상력이 약해지고, 자국 보호주의가 심화되는 등 실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3년도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의 결정과정에서도 섣부른 보조금 맞대응이 통상마찰로 이어질 뻔 했다. 정부는 당초 승용기준 올해 최대 680만원까지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직영 사후관리(AS)센터를 운영하지 않는 제조사 모델에 대해 주행성능보조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정부의 보조금 개편안 초안대로라면 국내에서 직영 AS센터 대신 협력사(딜러사)를 통해 AS센터를 운영하는 대부분 수입 전기차의 경우 최대 250만원까지 보조금이 줄어든다. 이에 대해 수입차 업계와 EU 측의 항의가 잇따랐고 정부는 딜러십 AS센터 운영에 대해선 주행성능보조금의 80~90%를, 협력 센터 직원 교육 의무 이행 시 100%를 지급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우리 정부가 국내 제조사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 지급을 강행할 경우 추후 EU 측의 차별적 조치가 강해져도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을 발표한 지난 2일에도 EU측 대표단에게 보조금 개편안 취지를 설명하는 등 통상마찰 가능성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정부 관계자는 “관련 법과 시행령, 규칙 등에 근거해 탄소저감 기술이나 산업에 여러 지원이나 규제 해소를 추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면서도 “현 정부 출범 이후 등 통상 분야는 국제 규범(룰)에 근거한 외교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차별적·배타적 지원방안을 담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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