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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S대 출신’ 권상우 처럼… ’40대’ 은행원 희망퇴직 러시
② 다올·케이프가 당긴 방아쇠… 미래·KB까지 구조조정 한파
③ 카드·보험도 직원 줄인다… 업권별 온도차 ‘뚜렷’
④ 고참은 남고 신참·중참은 짐 싼다… ‘구조조정’의 역설
#. 한 시중은행 차장인 A씨(42)는 지난해 12월 그동안 꿈꿔왔던 희망퇴직에 성공했다. 희망퇴직 연령대가 점점 낮아져 1982년생까지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A씨도 신청요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수억원의 목돈을 단번에 마련한 A씨. A씨는 “퇴직금으로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나머지 모아둔 돈을 더해 동네에 작은 카페를 열 계획”이라며 “인생 2막 만큼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일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 지난해 초 희망퇴직으로 대형 보험사를 떠난 A씨(43)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보험을 판매하는 한 핀테크사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2019년부터 A씨는 희망퇴직을 계획하고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공부해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상태였다. B씨는 “보험사보다 월급도 많이 주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돼 있다”며 “20년 넘게 보험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데서 벗어난 해방감도 크다”고 했다.
금융권 전반에서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젊은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일찌감치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40대가 늘어난 결과다. 경영효율화와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희망퇴직에 우수 인재들이 떠나면서 구조조정 역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쫓겨나듯 짐을 싸던 눈물의 희망퇴직은 옛말이 됐다.
눈물의 희망퇴직?… 이젠 환호하며 나간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역대 최대실적을 거둔 은행들이 높은 수준의 희망퇴직금을 제시하면서 연말연초 은행권에서만 3000여명이 퇴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244명보다 1000명 정도의 직원이 더 짐을 꾸릴 것이라는 의미다.
신한은행 경우 2021년에 이어 2022년까지 2년 연속으로 희망퇴직을 한해에 두 차례 실시했다. 희망퇴직 대상자와 기회를 확대해 달라는 직원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1년에 1회 실시하던 것을 2회로 늘린 것이다. 이에 2021년 353명에 이어 2022년엔 250명의 행원들이 은행을 떠났다.
과거에는 희망퇴직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거나 적용을 앞둔 50대 직원을 위한 제도로 여겨졌지만 최근 40대 초반까지 희망퇴직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을 재작년 1972년생에서 지난해 1977년생까지 넓혔다. 만 44세도 대상이 된 것이다.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의 희망퇴직 신청 가능 연령도 만 40세부터이며 우리은행은 만 42세다.
증권사와 보험사도 비슷한 분위기다. KB증권은 2021년 1978년생에서 지난해 1982년생으로 5세 확대했다. NH농협생명은 재작년 희망퇴직 가능 연령이 1981년생이었지만 지난해 1982년생으로 확대했다. 결국 31명의 직원이 NH농협생명을 떠났고 1982년생은 없었지만 1979년생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희망퇴직을 대하는 금융사 직원들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 대형 시중은행 과장인 K씨(41)는 “희망퇴직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설렌다”며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수준”이라고 했다.
“재취업 걱정마라”… 고연령층 희망퇴직 독려나선 금융사들
희망퇴직 규모와 대상 연령이 확대되는 것은 서둘러 인생 2막을 준비하려는 40대 직원들과 디지털 전환에 따라 구조조정이 절실한 금융사의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경쟁력이 떨어지고 임금이 높은 고연령층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진행하는 희망퇴직에 과장·차장 직급의 직원들이 대거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연이은 구조조정 움직임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는 젊은 직원들은 퇴직 이후 상대적으로 넓은 재취업 문호를 보고 구조조정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반면 퇴직 이후 갈 곳이 마땅지 않은 관리자급 직원들은 퇴직 이후의 불투명한 삶 때문에 선뜻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못 한다. 30~40대 젊은 직원들과 달리 재취업 문이 좁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 고용동향 마이크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실업자·비경제활동인구 중 전직 금융·보험업(은행·보험·저축은행·증권업) 종사자는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한 4만9360명이었다. 이중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비경제활동인구는 5.7% 늘어난 3만7646명이었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만2414명, 구직 활동 중인 실업자는 1만1714명이었다. 무려 2만418명의 전직 금융맨들이 직장으로 복귀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비대면 물결이 거세지면서 금융권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회는 점차 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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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에서 금융사들은 연령이 높은 직원들의 희망퇴직을 독려하기 위해 자녀교육비를 지원하거나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 하는 등 희망퇴직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자녀 1인당 학기당 350만원(최대 8학기)의 학자금과 최대 3400만원의 재취업 지원금을 지급한다.
우리은행도 자녀 1인당 최대 2800만원의 학자금과 최대 3300만원의 재취업 지원금을 제공한다. 신한카드 경우 최대 4년간 자녀 학자금(연간 700만원 이내)·최대 1500만원의 전직 창업지원금을, 미래에셋증권은 800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자녀 1인당 5년치 학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KB국민은행 경우 지난 2016년 ‘KB경력컨설팅센터’를 열고 재직 및 퇴직직원들의 재취업, 창업 등을 지원하는 중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사들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하면서 핵심인재가 유출될 뿐만 아니라 우수 인재들이 고용 불안을 이유로 취업을 기피하는 역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며 “비용 절감을 통한 이익 확대에만 매달리다 경쟁력 훼손 등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고연령층 직원들은 재교육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야 구조조정의 선순환이 나타날 것”이라며 “희망퇴직이 일방적인 퇴출이 아닌 재기의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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