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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주주 지배력 확대’ 인적분할의 비밀
② 동국제강·OCI 등 인적분할 기업 주가 하락… 주주들만 ‘분통’
③ 주주 눈치에 ‘물적분할’ 철회한 기업들, ‘인적분할’로 작전변경?
물적분할에 대한 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 인적분할을 시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인적분할은 물적분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주 친화적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기업가치 상승 없이 대주주 지배력만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과세 이연 특례가 올해 종료를 앞두고 있어 인적분할에 나서는 기업은 늘어날 전망이다.
인적분할이란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것을 의미한다. 물적분할은 모기업이 신설 회사 지분 100%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물적분할된 신설 회사 상장 시 기존 주주들은 단 한 주의 주식도 받을 수 없어 주주들의 반발이 크다.
‘물적분할’ 제동 걸린 기업들…’인적분할’로 눈 돌리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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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증권시장에선 인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물적분할을 공시한 상장사는 총 36곳으로 2021년(46곳) 대비 소폭 감소했다. 반면 인적분할을 공시한 기업은 2021년 5곳에서 2022년 13곳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2010년(14곳) 이후 12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주요 기업으로는 동국제강, 한화솔루션, 현대백화점, OCI 등이 인적분할을 앞두고 있다.
시장이 인적분할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분할 이후 주식 교환 등의 작업을 거치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적분할 이후 대주주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지주사에 넘기고 지주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대주주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인적분할을 통해 기존 법인 A홀딩스(지주회사)와 신설 법인 B회사(사업회사)로 분할한 경우 A기업 주주는 두 회사 주식을 동일한 지분율대로 나눠 갖는다. A기업의 대주주, 자사주, 소액주주 비율이 각각 40%, 30%, 30%라면 A홀딩스와 B회사의 주주도 동일한 비율로 구성된다는 의미다.
인적분할을 활용해 지배력을 높이려는 대주주는 통상 분할이 완료되면 B회사 지분을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A홀딩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경영권을 강화한다. 특히 B회사 주가가 높아질수록 대주주는 더 많은 A홀딩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분할 이후 B회사는 각종 호재를 연이어 터트리며 주가가 올라가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A홀딩스 주가는 내려가고 B회사 주가는 올라가는 경향이 많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는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 교수는 “미국에선 인적분할 한 회사가 각각 별개의 회사가 되지만 한국에선 인적분할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분할 이후 총수 일가가 자회사의 주식을 활용해 지주사의 신주 발행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세제 혜택 노리는 기업들, ‘지주사 전환’ 막차 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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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분할한 기업의 상당수는 지주사 전환을 위해 분할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자사주 마법과 자사주의 본질’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상장기업의 인적분할은 193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92건은 단순분할이 아닌 지주사 전환 목적으로 활용됐다.
인적분할 이후 대주주의 지분율은 ‘지분 교환’과 ‘자사주 마법’으로 기존 회사와 신설 회사 모두에서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자사주 마법은 기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신설 회사의 주식이 배정되면서 대주주가 동원할 수 있는 지분이 늘어나 경영권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적분할 이후 대주주의 기존 회사 지분율 평균은 27%에서 41%로, 기존 회사의 신설 회사 지분율은 18%에서 32%로 늘었다.
최근 금융당국은 이러한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의 악용을 막기 위해 2015년부터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 자사주 의무소각, 배정된 신주의 의결권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 9건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인적분할에 나서는 기업은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지주사 전환 기업에 적용한 ‘현물출자 양도차익 과세 이연 특례’가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어서다. 해당 제도는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할 때 발생하는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세금 납부를 처분할 때까지 미뤄주는 제도다. 지분을 매도하지 않으면 차익에 대한 세금이 사실상 면제 돼 이를 활용하려는 기업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지주회사로 만들기 위해 멀쩡한 회사를 둘로 쪼개 복수 상장시키고 피라미드 형태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여기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 주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복수 상장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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